무슨 꽃일까? 며칠 전, 창밖으로 보이는 산에 노랑꽃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녹음사이로 듬성듬성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미 이울기 시작한 밤꽃보다 짙은 것이 혹시 모감주나무 꽃이 아닐까하는 기대를 갖게 했었다.

궁금증을 끌고 찾아갔다. 때마침 부는 바람에 우수수 날리는 것은 꽃잎이 아니라 낙엽이었다. 낙엽이 깔린 바닥은 영락없는 가을이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까시나무에 성기게 붙은 잎도 온통 누렇게 떠있었다.

몇 해 전부터 소나무에 재선충이 번져 전국적으로 막대한 산림 피해를 입혔다. 산과 평야, 바위틈이나 해변을 가리지 않고 적응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나무가 말라죽는데 방제가 속수무책이다. 신선한 향과 수려한 기품을 지닌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교감하는 나무여서 더욱 안타까운 터이다.

그런데 번식력 강하기로 버금가라면 서러워 할 아까시나무까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황화현상으로 나뭇잎이 지고 나면 광합성을 할 수 없어 나무는 말라 죽는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병리현상으로 보기도 하고, 고령화로 인한 생육저하나 환경재앙도 의심하는 모양이지만 아직 이렇다 하고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때는 토양을 산성화시킨다고 홀대받던 나무였다. 어릴 때는 무섭게 자리다툼을 하며 세를 확장하는 바람에 조상의 묘에 뿌리가 파고들까 저어하는 어른들의 염려도 들었다. 그러나 민둥산이었던 우리의 산하를 푸르게 만든 공이 만만치 않다. 상쾌감을 주는 달콤한 꽃향기는 정서와 낭만을 키웠고, 풍성한 밀원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무용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렸다. 이젠 우리의 정서 속에 어엿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나무일망정 그 친교력과 성공적인 입신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듯 시들어가는 것을 보니 안타까움을 넘어 두려움까지 든다. 병충해를 입은 것이든 환경오염에 의한 것이든 인간의 이기심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고 그 해가 반사되어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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