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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포럼-비 오는 날의 숯가마
어리벌이, 헐레벌떡, 쿵닥쿵 쿵쾅, 가슴이 뛴다. 함께 간 일행을 전부 잃고 말았다. 눈을 씻고 보고 또 봐도 아무도 없다. 오늘 나의 치부가 또 드러나는 순간이다. 길눈이 몹시 어두운 아둔함을 스스로 개탄하기보다는 아득한 고도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랄까. 둥지에서 떨어진 날지 못하는 어린 새 같은 기분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소풍가서 꽃 위를 나르던 나비들을 쫓아다니다가 선생님과 친구들을 잃고 울며 헤매던 전작(前作)이 떠오른다.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꼭 안아주며 다독여 주시던 그 품이 이 순간도 퍽이나 그리워진다.

일기예보에 비가 예고되어서 일까, 새벽안개 자욱한 거리를 헤치며 약속된 문학 기행 여정에 나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 일행이 전부 떠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니 좀 일찍 도착한 듯싶다. 일행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상기된 문우들의 표정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모두 앞으로 다가 올 여행길의 즐거움을 예견하는 듯 들떠 보인다. 우리 일행은 강원도 유명산으로 기세 좋게 출발하였다.

일상을 탈출한 설레는 마음을 질투라도 하는 듯, 일기예보를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무차별로 쏟아지는 장대비속에 청평 호수의 수면은 간지러움을 못 이겨 몹시 출렁이고 있다. 일렁이는 파란 호수 수면에 하얀 물안개가 둥실거리며 하늘로 비상을 서둘고 있다. 이미 산골짝에 오른 물안개는 골마다 고운 수채화를 아로 새겨놓는다.

어느 화가가 이처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가 있을까. 자연은 황홀한 작가요, 낭만에 흠씬 젖은 예술가이다. 감성이 풍부한 우리 문객들은 묵묵히 침묵 속에 청평호수를 바라다보며 나름대로 깊은 시심에 잠겨본다.

그칠 줄 모르는 빗줄기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유명산은 다음으로 미루고 예정에 없던 숯가마를 탐방하기로 의견이 일치되었다.

간신히 명소 숯가마 찜질방에 찾아 들었다. 생소한 곳이라 두리번두리번 촌닭이 되어 일행들 뒤만 따랐다. 탈의실에서 똑같은 황토색 제복으로 갈아입고 보니 우스꽝스런 광대가 따로 없다. 핸섬한 남자 문인도, 깔끔한 멋쟁이 여사님들도 모두 이 기회에 평준화를 마다하지 않고 즐거운 모습들이 된다.

미로 같은 긴 탈출구를 통하여 드디어 숯가마에 이르렀다. 커다란 아궁이에 뻐얼건 참나무가 큰 입을 이글거리며 화염을 토하는 듯 포효한다. 마치 동해 바다 하늘가에 붉은 태양의 비상이 연상되는 장관이다. 이글거리는 화덕 앞에서 모두 기도하는 순례자가 되어 두 손을 합장하며 비벼 댄다. 참나무의 좋은 성분을 골고루 뼛속 깊은 곳까지 전파하려는 본능적인 의식이다. 빛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태양빛이 그러하듯 참나무의 매콤한 탄소가 뱉어 내는 기운은 우리의 육신에 낀 노폐물을 땀과 함께 배출시켜 건강을 회복시켜 준다고 한다.

저온에서 차차 고온으로 이루어진 깜깜한 토굴에는 자신의 육체를 달구어 땀과 함께 잘 익혀 내고 있다.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연신 닦아 내며 몸속의 세포를 활짝 열어젖힌다.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 온다. 비 오듯 하는 땀을 식히려고 마당 단상으로 나와 앉아서 시원한 수박을 먹는 기분은 그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참숯 용광로에 뻘겋게 달구어진 몸이 오아시스를 만난 듯 그 만족감은 살아 있는 자만이 느끼는 행복한 순간들이다.

회원들과 같이 행동을 잘하다가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기에 혼자 토굴에 들어갔다. 그 사이 동료들은 그만하기로 하고 탈의실로 간 모양이다. 여기 저기 토굴을 찾아보아도 일행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얼마나 난감했던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물어 미로의 탈의실에 도착하고는 ‘후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일행 찾는 데만 온 신경이 모아져 유유히 탈의실로 들어섰다, 아는 남자 분들이 웃는 낯으로 나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다. 순간 얼마나 반가웠던가. 허나 기쁨도 찰라, 그 다음 순간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으니 얼마나 얼간이인가. 한 가지 일에 열중하면, 다른 일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집착증이 심한 성격은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남자 분들의 옷차림은 다행히 긴 팬티 바람이었다. ‘아차!’ 여기는 남자 탈의실?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에 또 한번 기절초풍을 하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멋진 반나체 모델을 공짜로 볼 수 없다며 관람료를 내라고 짓궂은 회원 한 분이 놀려댄다. 얼띤 나의 행동으로 우리 일행은 만나기만 하면 그때 일을 상기하며 지금도 폭소를 금치 못한다. 오늘은 장맛비가 내린다. 그날과 똑같은 정서를 느끼게 하는 날이다. 다시 한번 그 곳에 가고 싶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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