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된 심상을 표층에 들어내는 작업>

인천의 작가들-5. 김진희

김진희는 심상 깊숙이 잠재된 의식을 드러내어 이를 가시화시킴으로써 현대인이 진정 잃고 살았던 ‘그 무엇’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작업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필자에게 ‘그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잃어버린 자아’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자아’라는 의식의 심층과 표층을 그의 그림을 통해 읽어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화면에 드러나는 유형·무형의 이미지들은 작가가 자신의 심층을 들어내기 위한 메타포로 사용된 것도 있지만, 화면 구성을 위해 즉흥적으로 차용한 것도 있고, 화면의 질감이나 물성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하여 아예 지워버린 것도 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M. Proust)는 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의 유년기를 거슬러올라가 추억으로부터 오랫동안 잊혀졌던 경험을 회생시켜 생생한 정경을 창조함으로써 작품전체를 통하여 항상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마찬가지로 김진희의 화면 속에는 작가의 심상세계와 연관된 어떤 동화적인 내용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내적 경험과 창조의 감각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외부적 시각이나 손의 기교가 아닌 정신적 산물과 연관된다.

더욱이 김진희는 화면에 기교적 ‘욕심을 덜어내는 과정’이 그의 작업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점이 그의 작업세계를 단순한 현대미술의 형식논리에 적용시키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또한 그 점이 선과 색채 및 그것들 간의 관계가 하나의 주제를 이루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의식 또는 꿈의 세계와 연관시켜 그의 작업에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대목이기도하다.

이미 형식적으로 자유로워진 현대미술의 가치를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표현의 폭을 확대시키고, 내용적으로는 심상의 이미지 혹은 흔적을 화면에 제시함으로써 자연의 본질을 추적해나가고 있다. 작가 개인적 경험일 것 같은 이러한 흔적들은 그러나 우리 모두의 경험적 산물로써, 단지 우리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육신을 추스르기 위하여 감추고 있는 것들일 뿐이다. 즉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생명체와 비생명체들은 그의 가슴속 깊이 침잠해 있는 감춰진 대상들이자,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담겨있는 객관적 사물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것을 김진희는 마치 문인화가적인 어눌함 또는 소박파(Peintres naifs)적인 미숙함으로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에게 보다 순수한 공감을 확보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김진희는 이미 예술은 형식적으로 성숙한 상태라는 이상적 전제 안에서 오히려 유치한 면을 드러냄으로써 성숙성 속에서 나타나는 비 성숙성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이경모 미술평론가·인천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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