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승리로 끝났지만 웃통을 벗어젖힌 지네딘 지단(34·프랑스)과 루이스 피구(34·포르투갈)의 모습은 오래된 스틸 사진처럼 한동안 그라운드에 멈춰 있었다.지단과 피구는 아낌없이 서로를 격려했다.

근육질 몸매의 피구와 하얗고 깡마른 지단의 몸은 대비됐지만 이 장면은 팬들에게 승부를 넘어선 월드컵의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지단과 피구는 2001년부터 4년 간 스페인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옛 동지다.

레알 마드리드 구단주의 ‘갈라티코(스타 마케팅) 정책’의 1번 타자이자 첫 희생양이 된 피구가 지난 해 인터밀란(이탈리아)으로 옮겨 가면서 결별했지만 오랫동안 그라운드에서 우정을 나눴던 사이다.우루과이 출신의 호르헤 라리론다 주심이 종료 휘슬을 불자 두 영웅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피구는 쓸쓸히 라커룸으로 퇴장해야 했고 지단은 자신의 현역 생활을 화려하게 매듭 지을 순간을 꿈꾸며 대망의 베를린 올림피아슈타디온으로 향했다.

지단과 피구는 여러 모로 닮은 꼴이다.알제리 이민자의 아들 지단은 마르세유 뒷골목에서 처음 볼을 찼다.리스본의 노동자 거주구역 알마다에서 태어난 피구가 유년기에 축구를 접한 사정도 비슷했다.둘은 17세 되던 해에 나란히 프로에 데뷔했다.피구는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황금 세대’의 대표로 유럽 축구계에 이름을 알렸고 1995년 FC 바르셀로나(스페인)에 입단하면서 ‘대어’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칸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지단은 보르도를 거쳐 유벤투스(이탈리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만개했다.피구가 2000년 FC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때 역대 최고 몸값인 5천900만 유로(713억원)를 받자 지단이 이듬해 유벤투스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옮겨 오면서 7천300만 유로(883억원)를 챙겨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1998년과 2000년, 2003년 지단이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가 됐고 피구는 2001년 같은 상을 탔다.둘은 레알 마드리드에선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의 스타 마케팅 정책인 갈라티코의 ‘넘버 원과 넘버 투’로 불렸다.대표팀을 떠났다가 ‘삼고초려’의 권유를 받은 끝에 백의종군한 점도 같다.대표팀이 위기에 몰리자 기꺼이 조국의 부름에 화답했다.

하지만 월드컵과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등 메이저 이벤트에선 언제나 지단이 승자가 됐다.2000년 6월 유로2000 준결승에서 지단은 ‘끝내기 페널티킥’으로 피구를 돌려 세우고 결승에 올라 우승컵을 들어올렸다.6년 뒤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다.이번에도 피구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지단과 피구는 서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투혼을 바친 노장의 웃음을 교환했다.

그게 바로 축구의 가치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