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후반 14분에 터진 결승골의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백전노장’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32·유벤투스)의 슛이 ‘전차군단’ 독일의 그물을 또 한번 흔들어 놓는 순간 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5천명의 독일 축구팬들은 절망감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파비오 그로소(29·팔레르모)와 함께 ‘기적의 2분’을 공동 연출한 델 피에로는 5일(한국시간) 오전 도르트문트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06 독일월드컵 4강전에서 개최국 독일을 상대로 연장 후반 인저리타임(121분)에 재치있는 오른발 슛으로 이탈리아의 결승행을 굳혔다.

‘판타지 스타’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완벽한 골이었다.연장 후반 14분에 결승골을 잃고 어리둥절해 있는 독일의 막판 승부욕을 한번에 무너뜨린 델 피에로의 기막힌 오른발 인사이드킥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에 패했던 쓰라린 아픔을 씻고 네번째 월드컵 우승을 열망하는 이탈리아 축구팬들에 희망을 불어 넣었다.

오랫동안 공격의 핵을 맡아왔던 델 피에로였지만 독일월드컵을 앞두고는 사실상 주전자리에서 밀려나 ‘조커’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치른 총 6경기 중에 델 피에로가 나선 것은 4경기(137분). 그나마 풀타임 출전은 한번도 없었고, 호주와 16강전에 처음으로 선발 출전했지만 후반 30분 교체 아웃됐다.독일전 역시 긴장감 속에 벤치를 지키다가 연장 전반 14분 시모네 페로타(29·AS로마)와 교체출전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델 피에로는 독일월드컵에 유럽예선에서 단 2경기(1골)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월드컵 직전에 치러진 허벅지 부상으로 2005-2006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 모두 결장하는 등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하지만 그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는 달관의 경지에 도달했다.더구나 ‘라이벌’ 프란체스코 토티(30·AS로마)에게 주전자리를 내주면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이다.

델 피에로는 지난 11일 가나와 조별리그 첫 경기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상황이 어려워져도 항상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며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맞아 조국 이탈리아에 24년만의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전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델피에로는 이날 독일전을 마친 뒤 “독일의 홈 무대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라며 “최근에 비난을 많이 받아왔지만 오늘 경기를 통해 나의 열망이 누구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흥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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