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여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리고 싶어요.”

지난해 대구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서주현(32·부평구 산곡1동)씨는 휠체어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다.서울에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마친 서씨는 갑자기 찾아온 장애로 19살 때 재활원에 다니기 위해 인천으로 왔다.

“변해만 가는 내 몸이 무서웠습니다. 재활원에 가서야 수많은 장애인을 봤고 그때 내가 진짜 장애인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한창 사춘기에 닥친 시련이라 믿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또래들이 성적과 이성에 대해 고민할 시기에 서씨는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까지 자신을 이끌고 온 꿈을 생각하며 버텨냈다.

“어려서 어른들이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시면 ‘화가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어요.”

시련도 많았다. 지난 98년 서씨는 장애인 시설이 없다는 이유로 충북 청주 서원대에 입학 원서를 냈다가 거부당한 쓰라린 기억을 돌이켰다.검정고시로 어렵게 초·중·고교과정을 마치고 미술을 하고 싶어 찾아간 곳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은 그는 대학을 상대로 고소했고, 2년간 법정에서 힘겨운 싸움을 했다.

대학졸업 후에도 수없이 이력서를 내봤지만 돌아오는 건 깊은 한숨뿐이었다. 연락이 온 곳도 있었지만 서씨의 상태를 알고 나서는 돌아서곤 했다.지인의 소개로 서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인천여성회 일을 시작했다. 여성회는 성평등 교육, 여성주의 세미나, 여성관련 실태조사, 여성정책 대안마련 워크숍, 여성영화제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서씨는 여성회 미니홈피 운영과 웹메일 관리, 웹디자인 등 디자인에 관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아요. 물론 재택근무라 일하면서 (사람들과) 부딪치는 게 적지만 아직까지 사회는 여성, 장애인 등 약자들이 살아가기에는 힘든 곳인 것 같아요.”

남들이 장애를 갖고도 일을 하고 있으면 만족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서씨는 욕심이 많다. 내년에 대학원에 진학해 진정 하고 싶은 공부를 더 할 작정이다.얼마 전 서씨는 소재 고민으로 인한 오랜 슬럼프에서 벗어났고 막연했던 목표가 뚜렷해졌다.

“그동안 남들이 무슨 그림을 그릴 거냐고 물으면 명확한 답변을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어요. 어떤 것을 그려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컸거든요.”

서씨가 고심 끝에 얻은 소재는 장애여성의 누드다. 장애여성은 흔하지 않은 소재로 이슈화 될 만한 것 같다는데 착안했다. 지인들을 통해 모델 섭외는 했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애여성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앞으로 과제예요. 대학원 졸업한 뒤에는 작업실에서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는 것이 꿈입니다.”

정진옥기자 sky_soccer@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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