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 새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렁이 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달아나며 나를 부르고…

강한 향기로 부르는 코피
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어…

<서정주 시집 ‘화사집’에서>

끓고 있는 이 여름 무더위보다도 더 뜨겁고 몽롱한 이 시는 1936년 미당이 함형수(咸亨洙)와 함께 주재했던 동인지 ‘시인부락’창간호에 발표했던 초기 명작의 하나. 첫 시집 ‘화사집’에 실려 있다.

그의 초기 시들의 특징인 관능과 격정, 혼돈과 방황, 존재에 갇혀 있는 욕망과 육체의 갈등 같은 것들이 이 시에도 노골적이다 싶게 그려져 있다.

‘님’은 하고 많은 길 중에서 왜 따서 먹으면 아무런 고통도 없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 그 꽃밭 사이에 난 길로, 또 마약을 먹은 듯이 황홀하게 몽롱하게 취해 나자빠진 능구렁이 같은 등어릿길로만 달아나는 것일까. 그것은 징그럽고 지독한 유혹이다. ‘나’는 그 진한 향기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코피까지 흘리며 ‘님’을 뒤쫓는다. 이것은 그러나, 또한 견딜 수 없는 쾌락이다. 태양도 두 사람도 온통 달아올라 끓고 있는 대낮은 그것이 절정의 순간이기에 오히려 밤처럼 고요하다.

우리 시사(詩史)에 이처럼 인간의 목숨이 안고 있는 내면적, 본질적인 ‘죄’를 적나라하게 그린 걸작이 미당 이전에 있었을까

김윤식 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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