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대학교 시민대학에서 학생들을 위한 겨울방학 특강으로 일어 강좌가 있다기에 그 당시엔 일본어의 필요성이나 궁금증도 없이 그저 무료한 시간을 메꾸기 위해 청강했었다. 방학이라지만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수강한다는 것이 주부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강의실은 추웠고 학생들의 진도에 맞춘 강의였기에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책 한 권을 끝냈지만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 주마간산식으로 끝낸 후 나의 일본어 책도 책꽂이 깊숙이 꽂히게 되었다가 우연한 기회에 소문을 듣고 여성문화회관에서 일본어 강좌를 듣게 되었다.

강사님의 정확한 발음과 열성적인 강의에 전과는 달리 첫날부터 일본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주부들의 장·단점을 체크해 하나하나 억양, 발음 등을 교정해 주시고 매시간 학습에 필요한 자료들을 나눠 주시며 숙제를 일일이 체크하시는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부들이 지루해하면 우리가요를 일어로 노래하게 하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모르는 우리들에게 일본에서 성장하신 선생님이 겪었던 민족의 설움을 얘기해 주셨다.

지금은 선진경제대국인 일어를 배우지만 백제의 유민이 일본 건국에 공헌하고 백제의 왕인박사가 처음으로 한자를 일본에 전해 가르치고 그 시대에는 한반도 문화가 일본에 앞서 우리가 선진국이었다는 것을 강조해 우리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하셨다. 그밖에도 흥미있는 한일 관계의 역사 이야기, 일어 속에 숨어 있는 우리말과 동일어, 그리고 주체성 있는 일어 학습과 교과서에 없는 현장성 있는 용어도 배우게 되었고 일기쓰기도 숙제로 내주셨다.

수강료도 저렴하고 이런 좋은 기회가 온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으로 숙제를 완성하지 않으면 잠도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남편과 대학원생인 아들이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집에서 하루에 세 시간씩을 공부할 수 있었다.

시 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시 쓰기 지도를 하시어 나의 시가 교실 게시판에 붙은 것을 보고 기쁨과 자부심도 생겼다. 작품 발표땐 ‘역설 3·1운동’이라는 꽁트에 참여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교실에 붙어 있는 ‘남과 같이 하면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표어대로 9개월 동안 열심히 여성문화회관을 오고가며 공부하니 강사님의 주선으로 일본 여성과 펜팔도 하게 되었다. 사전과 씨름하며 써야 하는 편지이기에 역시 외국어는 펜팔을 해야 공부가 많이 된다. 그 나라의 풍습이나 습관 또 우리의 현재 위치도 알게 된다.

일본 주부의 정성이 담긴 편지를 기다리며 받아보는 재미, 성취감, 외국어로 서로 교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이제는 일본어 팸플릿과 문고판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일기도 쓴다. 일본 여행을 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을 듯 싶으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급변하는 사회나 세계화에 발맞추기 위해서는 우리 주부들도 공부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겠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을 알아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현대의 지성인은 3가지 정도의 외국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어는 필수인 것 같다.

지금은 집에서 카세트 테이프로 공부하고 있지만 기계에서 획일적으로 나오는 음성보다는 육성으로 직접 듣는 선생님의 음성을 자유로이 듣고 공부할 때가 더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의 발음을 수정받지 못하는 점과 질문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여성문화회관에서의 일본어 수강은 우리 주부들에게 전혀 부담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주시는 강사님과 여성문화회관 관계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주부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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