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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남북측 가로막고 권위적 이미지 형상화
'외형은 응모자의 판단에 의하되 국제도시로 부상하고 있는 인천에 부합되는 미래지향적이고 인상적이며 친근감을 줄 수 있는 웅장한 예술적 조형 건축물일 것.

기능은 2000년대 문화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센터의 역할과 시민휴식처로서의 기능을 부여할 것.

설계주안점은 경제성, 시설별 규모 및 기능의 적정성, 건물배치, 건축재료로 구분하여 효율적인 대지이용과 건물구조의 합리화로 관리비 절감과 에너지 절약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시설별 규모와 음향, 조명, 무대설비 등의 기능은 시설규모 계획을 참고하여 응모자가 적정하게 판단할 것.

건물동수는 2개동 이상도 가하나 이용의 편리성을 제고할 것이며, 경제적 자재를 사용하되 내구성이 크고 안전하여야 하며 시공이 용이한 국산 KS제품을 우선 채택할 것.

건축연면적은 5천500평 내외 규모로 하되 1천200석 정도의 대강당, 400석 규모의 소강당, 500평 정도의 전시실, 200석 규모의 회의장 및 연회장, 야외시설로 응모자 임의로 전시장, 공연장, 놀이마당을 제안할 수 있다.

또한 응모자가 판단하여 주차장을 둘 수 있으며, 기타 800평 규모의 시립예술단 연습실과 사무실, 150평 규모의 관장실 포함한 관리사무실, 50평 규모의 자료실을 제안한다.

조경녹지계획도 응모자가 판단하여 제안할 수 있으며 그 안에 예술적 조각품도 고려할 수 있음.’ (이상 ‘인천종합문화회관 설계지침서’에서 인용, 1988)

88서울올림픽이 성공리에 끝나는 시점, 올림픽의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인천에는 국내의 내로라하는 60여 개 건축설계사무소들이 대거 예술회관의 현상설계공모에 참가하여 눈길을 끈다.

그러나 어쩐 이유에선지 7월8일 작품 마감결과 아도무건축, 정림건축, 신건축+태건축, 공간연구소, 단우·모람건축, 예건사, 정일엔지니어링, 세종건축, 청우건축 등 10여 개 사무실만이 참여하는 저조한 실적을 나타냈다.

이중에 각 참여사의 설계총괄을 맡았던 인물 가운데는 승효상(공간연구소 소속), 우경국(예건사 소속), 이일훈(신건축 소속), 김영회(정림건축 소속) 등 현재 국내외적으로 유명세를 구가하는 건축가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들은 공히 30대 후반, 40대 초반에 걸쳐 있는 차세대 리딩 건축가로 부상하고 있었다.

심사결과 실시설계권을 갖는 1등 당선작은 아도무건축의 안으로 결정되었다.

당선자 장석웅은 이미 중견건축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던 터였다.

심사위원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예술회관 현상설계의 의미를 월간 ‘건축문화’에 기고했던 원로 건축평론가 C는 불투명한 설계경기 방식을 강하게 꼬집었다.

“낙선작을 반환하지 않겠다. 심사위원도 비공개로 하겠다.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거야 뭐야?”

80년대 말, 민주화의 거센 바람이 불어오던 시절이었지만 여전히 관료사회의 오만과 권위 그리고 건축생산시스템에 대한 무지는 바뀌지 않은 상태였다.

세종문화회관의 건축조형이 전국 문화회관의 교본이 되어 흩뿌려지던 시절에 인천에도 전통을 빙자한 건축어휘, 그러니까 건물 자체로 권위적이며, 위압적이며, 역사주의적인 성향을 띤 외형의 디자인이 채택될 수밖에 없었다.

설계지침에 2개동 이상의 건물배치도 좋다고 기술해놨지만 이용의 편리성을 고려해야한다는 주문을 통해 탈 권위에 대한 건물디자인을 사전에 봉쇄하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또한 구월동 도시계획에 대한 참여 건축가의 이해가 충분치 못하여 북쪽 만수로를 정면성으로 하는 어처구니없는 응모작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이때의 응모작들 중에는 적극적으로 중앙공원의 남북축을 조경공간으로 연결하려는 노력들이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그 면에 관한한 당선작은 소극적이었다.

현재와 같이 공원의 남북축을 떡 하니 막고 서 있는 점령군의 위용을 자랑하며, 건물의 권위적인 이미지의 형상화에 초점을 맞춘 듯 우리의 전통건축으로부터 추출한 애매한 디자인으로 마감했던 것이다.

건축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지금 시각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건물이 인천예술의 중심공간으로 등장한 것이다. <계속>

글: 전진삼(건축비평가)

나오는 사람 C(실명 최창규) : 작고, 1919년생, 일본동경흥아고공 건축과 졸업, 건축평론가 겸 건축가로 활동했으며 한국건축가협회장과 신진건축 대표를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의 주변’역서로 ‘공간·시간·건축’(2권) ‘인간과 건축’ ‘건축과 도시’ ‘빛나는 건축’ 등이 있다.

김경수 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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