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시민기구 중심 '실사구시' 해법 모색

-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 발족


97년 11월21일 밤 임창열 경제부총리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신청을 공식 발표함으로서 한국 경제는 IMF 체제로 들어섰다.

IMF 관리하의 고금리 정책은 중소기업의 도산과 대량 실업사태로 이어졌다.

공단이 밀집한 인천은 전국 평균 보다 30% 가량 높은 실업율을 나타냈다.

인천지역 실업률은 98년 1월 5.9%(6만3천명), 2월 6.4%(6만7천명)로 상승하다 7월에 이르러 9.5%(10만4천명)를 기록했다.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는 지역 시민사회 각계 인사들이 4개월간의 준비위원회를 거쳐 98년 9월4일 출범했다.

인천본부는 이날 64개 시민, 사회, 종교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인천대 강당에서 출범식을 갖고 ‘실질적인 고통분담’, ‘고난의 상호연대’란 구호 아래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범시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자임했다.

서울에서 98년 6월23일 종교·노동·언론·경영·학계·시민단체 등이 참여해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가 출범한 지 2개월여 후였다.

인천본부는 민간차원의 범시민운동, 실사구시적 제안과 실천, 지방정부와 상호 협력 등 3대 사업방향을 밝히며 정확한 실태조사에 근거한 구호사업, 자활지원 대책을 마련하는데 힘을 모았다.




98년 11월 겨울을 앞두고 ‘1만세대 겨울나기 사랑의 쌀모으기 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모금사업을 벌였다. 이 사업에는 지역사회 각계각층이 대거 참여해 실업극복 인천본부는 범시민 실업대책 기구로서 역할을 다졌다.

범시민 대책기구로서 인천본부에는 민주개혁시민연대 소속 40여개 단체와 기독교 실업대책위원회, 조계종 인천사암연합회,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등 종교단체, 민주노총·한국노총 인천본부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천지회 등 의료단체, 인천사랑여성모임, 여성실업대책인천본부 등 여성단체, 인하·인천대 민주교수협의회, 인천YMCA, YWCA, 목요회, 새마을운동협의회, 민예총 인천지부 등이 참여했다.

상임대표에 김병상 신부, 임송산 스님, 최세웅 목사, 장석우 인천전문대 학장이, 공동대표에 김학준 인천대 총장, 김광식 새마을운동협의회 인천지부장, 남세종 인천경실련 공동대표, 배경숙 전 인하대 교수 등 12명을 선임했다.

상임집행위원장은 양재덕 민주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가 맡았다.

인천본부는 10월 지역언론사와 공동으로 ARS 전화와 시민성금 예금구좌를 개설해 모금에 나섰다.

1통화에 1천원 적립되는 ARS 성금은 2달만에 3만통을 넘어섰다.

의원(14곳)과 한의원(16곳), 치과(30곳), 약국(10곳)을 연계해 실업가정에 대한 의료할인을 시행했고 실직자, 노숙자 급식을 위해 인천본부가 위치한 인천전문대에 식당에 열었다.

본격적인 모금 및 지원사업은 본부 및 소속 기관, 단체별로 12월부터 돌입했다.

- 1만세대 겨울나기 사랑의 쌀모으기 운동


한편으로 실업정책의 현실적 대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와 심포지엄을 주기적으로 열어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조성과 시민참여에 노력을 기울였다.

민관 협조체제의 구축, 긴급구조망 확충 등의 시급함을 환기시키고, 일시적 지원의 한계에서 벗어나 일자리 제공으로의 실업대책 전환, 직업능력 개발 등 사회안전망과 근본적인 고용대책을 모색했다.

인천본부는 98년 11월25일 겨울을 앞두고 ‘1만세대 실직가정 겨울나기 사랑의 쌀모으기 추진본부’를 구성, 사각지대에 놓인 극빈 실업자 긴급 구호에 사업을 집중했다.

각 교회와 사찰, 지역언론사와 함께 이듬해 2월까지 집중 모금운동을 벌였다.

쌀모으기 사업의 기본 목표는 생계가 막막한 실업자 가정 1만세대에 쌀 30키로씩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당시 인천지역 실직자 10만여명(통계청 추산) 중 인천시는 한계 실직자 가정이 1만2천세대에 이르고 있다고 밝혔다.

추진본부는 인천시와 공동으로 실태조사를 벌여 확인한 저소득 주민 5천5백명과 추진본부를 방문해 접수한 주민 2천9백26명, 교육청이 확인한 결식아동 4천157명 등 총 1만2천583명을 지원대상으로 선정했다.

추진본부는 12월부터 3개월간 1만세대 실직가정 겨울나가 사업을 통해 쌀 348t과 성금 1억원 등 총 8억4천여만원을 모금했다.

모금에는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 기업, 농협 등 은행권, 인천시와 구청, 경찰청 등 관공서와 공기업 등이 두루 참, 1만936세대에 쌀과 난방비, 농협상품권, 생필품을 지원했다.

- 여성실업대책 인천본부 구성


한편 인천여성노동자회는 98년 6월 서울·광주·부산·안산 지역 여성노동자회와 함께 여성실업대책본부를 구성, 대량해고 사태에 피해가 컸던 여성의 실직 규모를 조사해 드러내고, 여성 가장 실업의 심각성에 여론을 환기시키며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 실업자에 대한 정책 및 자활사업을 촉구했다.



인천여성노동자회가 중심이 돼 구성된 여성실업대책본부는 IMF 체제하에서 발생한 여성 가장 실업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여성실업대책 인천본부는 여성상담센터를 개설하여 IMF 체제하에 발생한 정리해고, 임금체불에 대응하고 일자리를 잃은 여성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한 사업을 전개했다.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있는 여성 실업자들에게 노동부 지방관서나 지방자치단체에 일자리를 신청토록 하는 구직등록 운동을 벌였다.

또 실직 여성들의 모임인 ‘실업극복여성상조회’를 운영하고 중장년 여성실업자 일자리 만들기, 실직 여성 가장 생활지원, 자활공동체 구성을 통한 생계지원 사업을 벌여나갔다.

이후 2000년 3월, 인천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조 인천지부는 ‘비정규직여성 권리찾기 인천지역운동본부’를 조직했다.

운동본부는 IMF 체제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차별적 해고를 당하고 복지와 모성보호 측면에서도 후퇴했으며, IMF가 끝난 후에는 80% 가량이 비정규직 노동자화 되어 임금삭감 등 열악한 노동 조건에 처해졌다고 강조했다.

운동본부는 임시직, 파트직, 용역직, 계약직 등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법률 상담 및 소송 지원사업, 비정규직 권리찾기 및 의식강화 교육, 홍보활동을 벌였다.

- 실직자 일자리 사업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는 겨울나기 사업 후 99년 봄부터 사업 방향을 구호에서 자활사업으로 전환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업, 공익성 근로사업을 찾아나섰다.

이를위해 99년 4월 시작한 것이 ‘고용창출을 위한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사업’과 주말농장 사업이다.

인천본부는 환경사업단을 구성하고 계양구 다남동과 김포지역에 닭, 오리농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음식물쓰레기로 생산된 사료에 가축의 폐사가 잇따랐고, 쓰레기 분리·가공에 따른 고가의 장비, 기술상의 어려움에 봉착해 만 7년만에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사업 초기, 실직자를 위한 일자리에 기여하고 부산물로 거친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주었으나 경제사업으로는 실패한 것이다.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는 동춘동, 남촌동 등지 2만여평의 공한지를 개간하고 실직자를 위한 주말농장을 열어 채소를 심었다.

인천본부는 다남동과 연수구 동춘동, 남동구 남촌동 등 3곳에 2만여평 공한지를 빌려 개간하고 실직자를 위한 주말농장을 운영했다.

주말농장에는 1천여 세대의 실직자들이 가구당 5평씩 할당받아 채소심기에 참여했다.

주말농장 사업은 2002년까지 계속돼 매년 농사를 지었고, 남촌동 배추농사는 지금도 계속돼 해마다 저소득층 김장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남촌동 주말농장은 자립농으로 발전해 10세대가 독립적인 자활 농장으로 전환했고 현재 인천시 광역자활영농공동체 제1호로 불리는 ‘한마음농장’의 모태가 됐다.

인천본부는 취업알선 사업을 벌여 년 2천여명에게 중소기업체와 공장 취업, 가사도우미, 간병 등 취업을 알선하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본부 사업으로 방문보육사, 산모도우미, 도시락 배달사업 등의 사업을 개척했다.

무료진료, 방문진료, 어린이집·공부방 모금사업 등을 벌였고 구청의 공공근로사업을 위탁받아 시행하기도 했다.

또 한편으론 실직자들을 위한 등산, 수련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해 생활에 대한 의욕과 사회 적응력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인천본부는 취업과 자립 사업, 공공근로, 농장사업, 사회봉사 등의 일을 추진하면서 상조회를 꾸렸는데 초기 그 대상자는 1만명에 달했다.

99년 이래 인천본부를 거쳐간 실직자 등 상조회원은 4만명이며 회비(3천원)을 내는 현 회원은 2천여명이다.

- 자활후견기관 사업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에 200여개의 ‘자활후견기관’이 세워졌다. 생활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소모적인 생계 급여를 나눠줄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만들어 ‘생산적’ 지원을 하자는 것이었다.
인천에는 2000년 11월 계양, 남구, 동구, 부평, 연수, 중구 등 6개 자활후견기관이 설립되고 이듬해 7월 강화, 남구미추홀, 남동, 부평남부 자활후견기관이 설립됐다. 2002년 7월에는 서구자활후견기관 추가 지정돼 모두 11개 후견기관이 자활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계속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실직과 저기능, 고령화, 장기화 하는 실업자 대책에 부심해온 실업극복 인천본부는 이때 자활후견기관을 위탁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실업극복 인천본부의 각 지부는 현재 8개 후견기관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이들 후견기관들은 2000년 11월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인천지부를 창립하고, 2001년 집수리공동사업단, 간병공동사업단, 2002년 재활용사업단, 영농공동사업단을 각각 발족했다.
실업극복국민운동 인천본부는 2002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민간의 힘으로 빈곤과 실업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민운동을 표방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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