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름 1년중 물이 제일 많이 들어오는 음력 7월 백중사리를 기해 인천 동구 화수부두에서는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다.

주민들 삶의 근원이 됐던 부두라는 기능이 거의 사라진 빈한한 마을. 비좁은 골목 게딱지 같이 붙은 집에서 겨우 100여가구가 가난을 이불삼아 살고 있는 곳. 사방은 공장으로 둘러쌓여 철가루와 공해 속에 젖어가는 화수동 7번지다.

사진을 찍는 한 그룹의 예술가들이 조촐한 마을잔치를 벌인다. 주민들의 낯선 시선을 감내하며 오랜 시간 마을안 이곳저곳을 찍은 사진작품을 내걸고 음식나눔과 작은 공연으로 다가갔다. 주민들은 비로소 경계를 풀고 만남을 반겼다.

판을 벌인 이들은 인천카톨릭대학교 사회교육원 출신들과 자유사진가들이 모여 결성한 이마고(Imago)다. 중심 인물이 있다. 이들에게 사진을 가르친 인천의 중견 사진작가 류재형씨. 화수부두에 주목, 이마고를 그곳으로 데려간 그다.

올 여름에도 이곳에서 마을축제를 펼친다. 화수부두 기획사진전 ‘도시속의 섬 이야기’로 마을 주민들과 재회, 회포를 풀려한다. 날짜는 역시나 음력 7월 백중사리로 골랐다.

▲굿작업으로 인연 맺은 화수부두

“한때 굿작업에 빠져있었습니다. 부두에서 펼치는 굿이 가장 화려하죠. 한번 굿이 열리면 며칠동안 그들과 어울려 먹고 자곤 합니다. 화수부두와의 연도 그렇게 맺어졌어요. 부두가 번성했을 당시 굿이 많이 열렸지요. 내집 드나들 듯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류 재형 작가에게 화수부두는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배터 중 유일하게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다 조선소와 얼음공장, 철공소 등이 산재, 삶이 힘에 부치기는 하나 사람사는 냄새가 났다.

이곳에서 가난은 얼굴인 양 드러나 있다. 아직도 아궁이에서 불을 때는 집이 2곳이나 된다. 100가구 200여명에 불과한 주민들, 아이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홀로사는 노인들이 대다수다.

골목을 가로질러 공중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으며 인근 공장에서 날아오는 쇳가루 분진으로 편안한 숨을 쉰 것이 언제였던 가 가물가물하다. 게다가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하나밖에 없다.

“연민의 정이 있어요. 사진기를 둘러 메고 처음 그곳 갔을 때 주민들은 이방인을 잔뜩 경계했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심지어 사진 찍으면 신고하겠다는 이도 있었으니까요.”

이들과 소통의 끈을 맺고 싶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사진을 매개로 한 특별한 만남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나누고 싶었다. 화수부두 기획사진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드디어 첫 만남, 그리고 둘째 만남

카톨릭교육대 사회교육원에서 오랫동안 사진영상과 강의를 맡아 온 류 작가다. 제자들을 중심으로 스터디 그룹을 결성했다. 모임 이름을 ‘이마고’로 붙였다. 몇몇 자유사진가들을 불러들인다. 화수부두 프로젝트에 참가할 진영을 정비한 것이다.

“1년동안 화수부두를 드나들었습니다. 점차 주민들의 경계가 풀려갔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을 펼쳐보이기 위해 D데이를 잡았습니다. 사진전이 목적이긴 하지만 주민들과 나눔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음식나눔잔치였어요.”

2004년 8월28~29일 이틀동안 화수부두에서는 조촐한 잔치가 열린다. 그날이 바로 1년중 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음력 7월백중사리다.

“기대만큼 성공적이었어요. 작업을 진척시켜서 1년후 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번엔 작업을 특별하게 진행시켰다. 작가마다 주민 2인을 짝 지워 집중적으로 인물을 조명하기로 했다. 1년동안 그 집을 드나들며 작업을 해나갔다.

응원군이 나타났다. 부토가 서승아씨가 축제에서 공연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다. 타악그룹 ‘들소리’에 실험예술가, 마임이스트 등이 함께 할 뜻을 비췄다.

꼭 1년만에 두번째 잔치를 연다. ‘둘물, 화수부두의 또 다른 이야기’라는 타이틀을 걸었다.

“이번엔 4일간의 축제를 벌였습니다. 골목 들어가는 천장에 구조물을 세워 사진을 걸고 호박밭 옆에, 혹은 벽마다 걸었어요. 현장에서 주민들을 메이크업을 해주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습니다. 공연도 풍성했죠.”

▲‘도심속의 섬이야기’

한해를 쉬고 올해 세번째 장을 연다. 주민들에게 뭔가 행복함을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사진작가들과 예술가들이 오는 25~28일 화수부두 뱃터에서 마을축제를 펼친다. 기획사진전 타이틀을 ‘도시속의 섬 이야기’으로 정했다.

“인근에 두산인프라코어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완전히 고립됐습니다. 도심속의 섬을 연상시키죠. 주민들의 절반은 마을밖 철길까지 나와본 적이 없답니다.”

올해는 뭔가 확실한 이미지를 남기고자 했다. 우선 작가들 각자 주제를 정해 작품을 만들었다. 골목에서 바라본 하늘을 시간대별 찍은 이가 있는 가 하면, 창문과 문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했다. 컬러를 주제로 정한 작가에, 인물작업에 몰두한 이도 있다. 모두 25인이 참여했다.

“사진을 사진답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사진가 그룹이므로 작품다운 마무리를 하자는 차원에서죠. 벽과 담 등 공간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구조물을 세워 사진이 잘 보이도록 배치하려 해요.” 설치미술가 박황재형 작가가 전시 총감독을 맡아힘이 난다고 반긴다.

영상설치전도 더했다. 부둣가 두집을 골라 그간의 작업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밤엔 야외에서 상영할 계획이다.

예술가 공연도 줄줄이 준비했다. 첫날(25일)엔 경남 함양출신 미술가 무진 정룡이 대형 광목에 물감을 뿌려 걸개그림을 그리고 부토가 서승아 공연에 이어 일본 연주가와 서커스단이 흥을 더한다. 이외에도 제주향토 인간문화재 박경숙, 전라도 타악팀 ‘얼쑤’ 등 다양한 팀들이 매일 저녁 무대를 풀어놓는다.

“올해 행사의 대의적인 주제는 마을사람들간 화해입니다. 축제를 통해 서로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누자는 겁니다. 물론 작가 모두들 축제기간 내내 마을에서 먹고 잘거예요. 재워주신다고 했거든요.”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고 환하게 웃는다.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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