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이상하다. 폭 100m, 전장 4㎞에 달하는 중앙공원 말이다. 인천 도심의 대표적인 녹색공간인 중앙공원이 군데군데 도로로 잘려 있고 그 한 가운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하 ‘예술회관’)도 자리 잡고 있다.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못 대단한 걸 발견한 양 혼잣말처럼 씹고 있었지만 워낙 음성이 걸걸한 친구인지라 옆 자리의 내 귀에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인천중앙공원. 100여 년 전 미국 뉴욕에 조성된 폭 800m, 전장 4㎞의 센트럴파크를 빼닮았다.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은가? 1982년 첫 삽을 떠서 20년 넘게 공을 들여온 근린공원이다. 여타 경쟁도시에 비해 공원면적이 턱 없이 부족했던 인천에 10만 여 평의 중앙공원은 녹색도시 인천의 위상을 재각인 시켜주는 대단한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구월동 신시가지를 남북으로 가르며 간석동에 이르는 지형의 굴곡을 타고 마치 녹색의 강물처럼 흐르는 선형의 공원. 바로 밑으로는 인천지하철 1호선의 중심 역사들이 연결되며 역세권의 프리미엄을 증폭시키고 있다.

녀석은 열심히 지도위에도 선을 그어대고 있었다.

“뭐하는 거야?”

“여기 말이죠. 이 부분…”

도로로 토막 난 각 지구별 공원을 두터운 연필 선으로 연결하던 녀석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도로로 끊긴 공원들을 브리지로 연결해서라도 지구별 공원의 단절을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방치해두는지 모르겠어요.”

말이 전장 4㎞이지 현재의 중앙공원은 중간 중간에 도로로 구분된 녹색 섬들로 구성된 기형적 공간구조를 갖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니 공원의 남측 끝에서 북측 끝까지 공원의 내부 길로만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7지구의 예술회관은 그나마 공원의 남북 간 시선의 축을 막고 있음은 물론 무지막지한 볼륨의 건물 전체로 공원 내 보행로를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녀석의 그림은 차로로 단절된 공원과 공원사이를 연결하는 다양한 형식의 브리지에 대한 개념스케치로 발전하고 있었다.

인천시청역 지하 출입구 부근의 단차가 큰 지점에선 두 개의 누드 아트 탑을 이용한 철골 루프타입의 브리지가 걸려 있었다.

“작가가 따로 없네. 재미있군.”

여름방학을 기해 내 사무실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정보를 듣자마자 달려왔다는 녀석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는 2학년 학생이었다.

특별히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그어댈 수 있는 선이고, 아이디어일 수 있는 것이었지만 녀석이 도시공간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무언가 포지티브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흥미로운 것이었다.

일반 건축물처럼 특별한 기능을 앞세우지 않는 오브제 형식의 폴리들을 공원과 공원의 단부에 설치하고 그것들을 공간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은 단순히 브리지 정도만은 아닐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녀석은 흥이 돋았는지 스케치 자료를 스캐닝 하더니 컴퓨터에 자료를 올려놓고 본격적으로 디자인할 태세를 보였다.

전장 4킬로미터 공원의 실제적인 완성과 더불어 현재의 부분적인 숲과 몇 개의 테마만으로 궁색한 공원에 이벤트의 종류를 다각화시키겠다는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짧은 기간이나마 내가 경험한 녀석의 열정으로 보아서는 필시 예술회관의 볼륨까지도 과감하게 손을 댈게 뻔했다. 지금 내부 공간의 리노베이션 공사가 한창인데….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겁도 없이 그 건물의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통해서 잃어버린 중앙공원의 녹색 축을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회관의 설계자는 문학경기장을 설계한 당대 최고수 건축가 CSW 아니던가! <계속>
글=전진삼 건축비평가

등장인물
CSW(실명:장석웅)=1938년생. 한양대를 졸업했다. (주)아도무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이며, 18대 한국건축가협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명예이사이다. 2002 한일월드컵의 성지 인천문학경기장을 설계했다. 1999년에는 미국건축가협회 원로 명예회원에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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