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트 창시자 백남준을 추모하는 특별전이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올봄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에 이어 지난달 27일부터는 KBS가 기획전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을 개막,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인천미술계에선 영상미술에 대한 시선집중이 아직 두드러지지 않다. 작가군도 다른 장르에 비해 소수에 머무르고 있는 수준이다. 그들중 유독 보폭이 두드러진 이가 양승수 작가다. 일찌기 미디어 아트 개인전을 열어 주목을 받은 그다.

인천보다는 중앙화단에서 더 많은 초대를 받고 있는 그다. 주목받는 영상미술 기획전마다 초대작가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엔 성곡미술관이 그를 불렀다. 그룹전이 아닌 개인전이다. ‘양승수적 미디어 아트’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펼쳐진 것이다.

▲‘무의식적 주체의 환상’

“생활속 환경문화의 중심은 이제 미디어입니다. 앞과 뒤, 옆을 돌아보아도 미디어가 있어요. 더 나아가 미디어는 몸 그 자체가 됐죠. 작가로서 나는 올바르지 않아도 가야하는 합목적성을 아트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철학으로 끌어내려 합니다.

내 몸처럼 끌어안고 사는 미디어에 대한 코드를 알아내기 위한 것이 작업을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과 주체에 관한 철학이 담긴 미디어아트 작업을 하는 양승수 작가다.

여섯번째 개인전으로 치러지는 성곡미술관 초대전이 지난달 27일 개막, 오는 9월2일까지 이어진다. 타이틀을 ‘무의식적 주체의 환상’이라고 걸었다. 뉘앙스가 한없이 난해하다.

‘화려하지만 공허한 기호로 표현되는 현대사회의 불완적함을 인식하고 무의식적으로 탄생하는 주체를 표현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잃어버린 본질적인 주체를 향한 욕망을 나타냈다.’ 전시 기획의도로 내놓은 글이다. 난해함이 가시기엔 아직 충분하지 않다.

“현대사회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기호들의 난장입니다. 청각적 영상인 낱말로서 기표는 모든 것을 낳고 거둬들이는 거대한 상징적 질서의 미립자죠. 따라서 우리시대 근본 질서는 기표로 인해 구성됩니다. 기표적 자율성의 활력속에서 무의식적 주체가 태어납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주체는 그 어떤 것의 중심이 아닙니다. 주체는 기표의 연쇄로서만 연명하는 무엇인 것이죠.” 점점 더 난해해진다.
작품을 보면 비로소 작가의 이야기가 이해된다. 회전목마와 강아지, 원숭이라는 소재를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 내고 관객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갤러리 중앙에는 다섯마리의 회전목마가 있다. 목마의 표정엔 무거운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이 움직임을 빔 프로젝트로 투영, 한켠에 영상으로 보여준다. 단, 시간적 조작을 더했다. 회전목마와 영상 사이에 시간의 간극을 만들어놓았다.

회전목마의 움직임은 현재의 시간이며 영상은 지나간 움직임인 것이다. 관람자가 그곳을 떠나간 뒤 몇초후 영상엔 목마를 보고 있는 관람자가 나타난다.

다음은 강아지. 네개의 LCD 모니터 공간안에 한마리 강아지가 어슬렁거린다. 관람자가 화면에 다가서자 모니터 속 강아지가 반응처럼 짓기 시작한다. 관람자가 모니터를 옮겨 가자 그에 따라 이 모니터에서 저 모니터로 이동한다.

이번엔 세개의 빔프로젝트 화면으로 옮겨가자. 장난감 인형과 원숭이가 보인다. 인형은 무중력 상태 공간에서 움직이고 원숭이는 (빔 프로젝트에 비친) 나무막대 그림자에 매달려 있다. 인형이 있는 화면을 건드리면 순간 안에서 이동한다. 나무막대를 움직이면 원숭이가 화면을 옮겨 다닌다.

위의 캐릭터(그래픽 비주얼)들은 3D 모델링과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일련의 반응 시스템은 작가가 개발한 엔진에 의해 진행된다.

“모더니즘 한 작업에서 느껴지는 따분함을 배제하고 싶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그림자에 의해 원숭이라든가 인형들이 움직이고 신나게 놀죠. 그 안에 들어가 아이들처럼 욕망에 따라 움직이면 환상 속에 빠져있으면서도 네러티브를 느낄 수 있습니다.”

관객의 시선과 반응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작가적 열린 시각이 녹아 있다. 관객은 더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작품을 완성하는 주체로서 서 있게 된다.

▲‘권력과 욕망’ 뛰어넘기

작가적 출발은 평면 페인팅에서였다. 그럼에도 경향은 다분히 초현실적이다. 차츰 영상으로 넘어간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며 많은 감성적인 것을 느꼈다는 그다. 애시당초 영상을 향한 동경이 잠재된 듯 하다.

98년 인천영상미술제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영상작가로서 면모를 드러낸다. 그뒤 1년, 성 정체성과 타자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연다. 인간의 권력과 권위를 여성의 입장에서 타자로서 바라본 영상과 개념작업이었다.

철로된 문짝을 한쪽 벽면에 간격을 두고 세워놓고 온통 드릴로 구멍을 낸 뒤 후면에서 빛을 쏜다던가, 권위적인 이미지가 물씬한 액자안에 사람들의 체모를 모아붙여 걸기도 한다.

“문짝은 바로 여성이에요. 권위에 대한 피해자를 표현한 거죠. 사람들의 체모를 모아 내걸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권력의 의미입니다. 이때도 그러하듯이 늘 주제는 권력과 욕망이에요. 과거 권위적인 것을 파괴하고자하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인천에서는 물론이고 중앙 화단에서도 주목을 받는다. 2004년 신체의 파편화된 모습을 담아냈던 영상전 ‘사회적 신체’는 당시 영상미술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과거의 미술 재료들로는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보여주죠. 미디어를 선택한 것은 그 재료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다음 전시에선 먼거리에서 네트워킹 할수 있는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미디어 아트의 끝없는 확장을 시도하는 그다.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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