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인천대책위원회’

96년 12월26일 새벽 6시, 신한국당은 노동법, 안기부법을 비롯 11개 법안을 기습 처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부터 즉각적인 총파업에 들어갔다. 한국노총도 27일부터 총파업 투쟁에 돌입하고 대중적인 항의집회를 조직했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26일 오후 공동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조직 구성에 들어가는 등 날치기 법 철회를 위해 발빠르게 대응했다.

기습처리한 노동법은 국제기구가 요구해 정부가 개정키로 한 복수노조금지, 제3자 개입금지, 공익사업장 직권중재, 노동조합 정치활동 금지, 교원과 공무원 단결권 등에 대한 개정을 연기하거나 이행치 않은 것이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리해고제를 명문화하고 변형근로시간제 도입,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 금지, 쟁의기간 중 임금지급 금지, 해고자의 조합원 지위유지 기간 단축 등도 개악으로 지목했다.

안기부법은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이적표현물 소지죄와 불고지죄를 부활하는 것으로 안기부의 수사권을 회복하고 직원의 직권남용 금지 규정을 삭제한 것이다. 대책위는 이를 대선을 앞둔 공안통치의 회귀로 규정했다.

비상대책위는 당시 활동했던 ‘공안 탄압 분쇄 대책위원회’를 해소하고 참여 단체들을 노동법, 안기부법 기습처리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에 통합했다. 그리고 날치기에 대한 항의를 범국민적 투쟁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조직 확대에 나서며 신년 연휴를 앞두고 12월30일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97년 벽두부터 정국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97년 1월7일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인천대책위원회’(인천대책위)가 구성됐다.

여기에는 민주노총 인천본부와 한국노총 인천본부 연합주택조합, 인천지역노동상담연구단체협의회 등 노동단체와 목요회, 우리밀살리기, 경실련, 여성의전화,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등 시민·환경단체, 범민련 인천경기본부(준), 인천민중연합, 노동자중심의 진보정당추진위, 감리교교회협의회, 조계종 인천사암연합회, 민족화해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협의회 등 종교·진보정치·통일운동 단체를 망라하는 최대 규모의 60개 단체가 참여했다.

신부, 목사, 승려, 교수, 변호사, 의사, 시·구의원 등 244명이 지도·자문위원으로 함께했으며 김병상 신부 등 8명이 고문, 호인수 신부 박동일 목사 등 10명이 공동대표로 선임됐다.

인천대책위는 1월6일부터 부평, 동암, 주안, 동인천역에서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무효화 인천지역 1만인 선언’ 서명운동과 1천원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등 하루 하루 긴장속에 투쟁을 이어갔다.

인천대책위와 민주노총 인천본부는 1월12일 답동성당으로 농성장을 옮겨 천막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17일에는 인하대, 인천대 교수 1백여명이, 19일에는 인천지역 불교·원불교·천주교·개신교 인사 124명이 시국 선언과 함께 범종교인 시국기도회를 열었다.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김영삼 대통령은 1월21일 영수회담을 열고 노동법 안기부법의 재논의를 지시한다. 인천대책위는 25일 부평역 광장에서 1천여명이 모인 가운데 ‘날치기 노동법 안기부법 원천무효와 문민독재 종식을 위한 인천시민대회’를 열고 날치기 법의 전면 무효화 투쟁을 결의하고 거리행진을 벌였다. ‘절차, 내용은 문제없으나 국민이 반대하므로 재논의 하라’고 밝힌 김영삼 정부가 사태의 본질과 심각성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대책위는 성토했다.

31일에는 천주교 인천교구 주최로 답동성당에서 시국미사를 가졌다. 김병상 신부는 “불고지죄 등 수사권이 검찰, 경찰에서 대통령 직속기구인 안기부로 넘어갈 경우, 부당한 수사로 인권운동가 등 양심세력이 구제받을 길 없이 불순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고 강론했다. 미사 후 사제, 수녀가 앞장서고 신자와 시민 600여명이 동인천역까지 촛불행진을 시도했다. 경찰이 이를 봉쇄해 참가자들은 성당앞에서 규탄대회를 가졌다.

전교조 인천지부는 2월5일 ‘교원 공무원 노동기본권확보 추진 인천본부’를 결성하고 임시국회에서 교원, 공무원 노동기본법을 인정하는 등 국제규범에 맞도록 노동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인천지부는 2월19, 27일 각각 조합원 명단 60명, 54명을 공개했고 학교현장에서의 공개활동을 결의하며 전교조 합법화를 촉구했다.

인천대책위는 2월24일 임시국회를 앞두고 비상결의 대회를 열어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철폐와 교사 공무원 단결권 회기내 보장, 황장엽 망명사건을 법 개정, 철폐에 악용하지 말 것, 한보사태 철저수사 재발방지 등 3개 요구사항을 결의했다. 25일에는 8만3천명의 서명을 받은 ‘노동법·안기부법 무효화 및 민주적 노동법 개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3월8일 여야 합의를 통해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노동법 재개정 요구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공동전선에 따른, 정부수립 이후 첫 총파업과 시민사회의 단합된 저항을 바탕으로 이뤄진 성과였다. 노동법 개정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의 조직력과 사회적 위상은 크게 강화됐다.

개정 노동법에 노동계의 요구가 반영된 조항은 상급단체 복수노조 금지 철폐, 제3자 개입금지 철폐, 정리해고제(‘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만으로 명시), 무노동 무임금 완화, 대체근로(당해 사업장내 허용, 신규하도급 금지)등이다. 그러나 교원 단결권은 제외됐고 변형근로시간제, 노조 전임자 급여 등은 거의 고치지 않았다. 안기부법도 고쳐지지 않았다.

참여 단체별로 2~4명씩 조를 이뤄 철야해온 인천대책위의 답동성당 농성천막은 3월9일, 56일만에 철수했다.

- 민주개혁시민연대 구성과 활동

노동법 재개정 후 ‘노동·안기부법 개악철회와 민주수호를 위한 인천대책위’는 향후 시국과 지역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한시적 기구에서 상설 연대체로 전환했다. 97년 5월13일 출범한 ‘민주개혁을 위한 인천시민연대’(시민연대)다.

시민연대는 노동법 재개정이라는 성과를 토대로 민주노총 및 노동단체와 90년대 조직되고 성장한 시민단체가 결합한 인천지역의 독특한 연대체였다.

90년대 초반 까지 민족민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던 노동·민중단체와 여기서 분화해 독자적으로 성장한 시민단체들이 지역단위에서 연대한 새로운 형태의 전선운동체라 할수 있었다. 시민연대는 다양한 단체들과 그 지향점의 차이에서 오는 조직의 성격과 체계 등 난관을 조정과 합의를 통해 넘어 인천대책위 소속 단체 전체의 참여 속에 출범했다.

정경유착의 한보철강이 97년 1월말 최종 부도 처리되는 등 구조적 부정 부패가 여전히 만연해 논쟁이 심화하던 때였다. 시민연대는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결의하며 출범했다.

김선일 김영규 박동일 양재덕 오순부 이총각 정윤섭 홍성훈 등 초대 8인의 공동대표와 윤관석 사무처장이 선임돼 활동했다. 시민연대는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하는 기구로 자리하면서 지역이나 국가적 현안에 진보·개혁적 목소리를 담아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위한 운동을 펼쳤다.

출범과 함께 북한동포돕기운동 인천본부를 구성해 적극 나섰고, IMF 사태후 ‘실업극복 국민운동인천본부(98.9)’설립과 사업을 주도했다. 99년에는 ‘올바른 지방자치 참여를 위한 사업단’(3월), ‘대우사태 올바른 해결을 위한 인천시민대책위원회’(10월)를 구성해 활동했다. 2000년 들어 시정참여단, 의정감시단, 아파트공동체운동본부를 구성, 활동했고 총선인천시민연대에 참여해 낙천낙선운동을 벌였다.

이외 ‘이천전기 고용승계를 위한 지원사업’(98.6), 인천지역 공안탄압의혹 진상규명시민조사단(99.6), 경기은행 퇴출로비 및 부당대출 압력 의혹 진상조사단(99.7) 활동을 벌이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인천시민결의대회를 개최했다.

2003년 3월 시민사회 정책포럼(인천시민사회포럼)을 열어 매월 개최하기 시작했고 이후 인천지역 NGO 활성화를 위한 워크샵, 활동가 대회 등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인천대책위에 함께 활동했던 민주주의민족통일인천연합과 ‘평화와참여로가는 시민문화센터’(인천연대), 경실련 등 일부 단체는 얼마 안가 시민연대에서 빠졌고, 2002년 들어 22개 단체로 정리되었다가 2007년 현재 30개 단체가 소속돼 있다.

가톨릭환경연대, 건강한노동세상, 경인여대교수협의회, 남동시민모임, 희망을만드는 마을사람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민주노총인천본부, 부평시민모임, 생명평화기독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인천지부, 인천감리교사회연대, 인천노동연구원, 인천녹색소비자연대, 인천녹색연합, 인천민중교회연합, 인천불교인권위원회, 인천빈민연합, 인천생활협동조합협의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여성민우회, 인천여성의전화, 인천평화와통일을 여는사람들, 인천해고노동자협의회, 인천환경운동연합, 전교조 인천지부, 지역사회와함께하는 사제모임, 청솔의집, 민예총 인천지회,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6.15공동선언을실천하는사람들 통일아침 등이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저작권자 © 인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