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노동해방과 평등선언을 기치로 ‘노동자 대투쟁’이 점화한 지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더불어 ‘인천노동문화제’도 올해로 20주년에 이르렀다.

다음달 닻을 올릴 2007 인천노동문화제는 그간의 역사를 모으고 정리하며 성찰함으로써 현재의 위상을 확인하고 방향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타이틀이 ‘밥과일 20’이다.

“자본의 문화에서 탈피, 돈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문화를 개념으로 잡았습니다. 그 주체는 당연히 시민 대중이지요. 이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문화, 즉 대중들과 함께하는 노동문화제 입니다.”

인천노동문화제 공동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남희 위원장이 의미를 짚는다. 문화운동가이자 문화기획자로 활동해온 그다. 민중 모두가 함께 즐거운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힘을 싣는다.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운동

“20주년이라는 의미는 특별합니다. 내부적으로도 고민을 많이했습니다. 3년전부터 준비를 했어요. 그 중심 축은 문화입니다. 자본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죠. 더불어 한축은 방향성에 대한 모색입니다. 그래서 정책토론회에 비중을 두었습니다.”

올해의 인천노동문화제는 오는 9월7~9일 3일동안 인천대공원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조직위원회에서는 일찌감치 진영을 갖추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예의 창작기획공연이 축제의 중심이다. 춤과 영상이 결합된 서사적인 음악극을 준비했다. 세대간 소통과 대화를 내걸고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통해 87년의 정신을 반추해나가겠다는 기획의도다.

정책토론회를 더하고 노동미술굿을 여는가 하면, 참여 프로그램으로 길거리 난장에 풍물대동굿을 펼친다. 초청 연극도 있다.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줄 곧 고민해온 것은 노동문화제를 계속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축제를 그만둔다고 노동문화운동을 중단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모든 행사의 성패는 바로 대중과의 결합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는 가에 있지요. 때론 작은 동네에서 열리는 문화공동체적 축제가 훨씬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궁궁적으로 지역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민의 정점에 선 해가 20년을 맞은 올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토론회에 비중을 두었다. 운동의 발전방향을 세우고 노동자문화의 개념 검토와 정리, 실천적 과제 끌어내는 세가지 과제를 정했다. “노동문화제를 앞으로 계속 할것인가.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야기를 다 해보자고 했지요.”

그가 추구하는 것은 대중이 함께 즐겁게 만드는 문화다. 한때는 문화를 수단으로 운동을 해야한다는 사고를 갖기도 했다. “너무 무겁고 진지해지는 나를 발견했어요. 주먹 불끈 쥐고 투쟁하는 식의 접근이 이젠 통하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편안하게 열려야 창의적인 문화가 만들어지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대안문화, 몸과 마음으로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그것이 노동문화제의 지향점이라고 강조한다.

▲노동운동가에서 문화운동가로

외유내강형의 문화운동가. 사람들에게 내비쳐지는 이 위원장의 이미지다. 그렇다면 20년전 그의 모습은.

노동운동가로 출발했다. 지난 85년 오직 노동운동을 위해 인천으로 왔다. 대학시절 소위 운동권이었던 그는 이후 변혁운동에 앞장 서 왔다.

당시 사업장 노조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이 문화운동과 결합한다. “정확히는 문화운동 단체들이 노조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과 음악, 풍물 등 장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기층운동으로서 노동운동을 선택합니다.

각 노조에 문화패들이 만들어지고 문화선동대 역할을 하죠.” 노동운동 일선에 있던 그와 문화패들과 교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간다.

문민정부로 접어들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로움이, 문화적으로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한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그간 억눌렸던 삶의 양식이 한순간에 폭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과거의 획일화된 운동방식으로 대중을 더이상 이끌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선 바로 문화를 통해야 한다는 답을 냈죠.”

그러한 지역내 문화계 합의로 탄생한 것이 ‘인천문화를 열어가는 시민모임’이다. 최원식 인하대교수가 대표를 맡았다. 그는 사무국장으로 합류했다. 이전의 노동운동가 이미지를 벗고 문화운동가로 확실하게 넘어서는 순간이다.

이후 월미평화축제 집행위원장을 거쳐 3년전부턴 노동문화제 조직위원장 자리가 그에게 주어졌다. “이젠 사회통합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대중의 삶엔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어요. 그동안 만들어낸 문화정책과 인프라를 시민들과 어떻게 결합시키야 할까, 그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다.

글·사진=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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