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공석’이 2년5개월에 접어들었다. 시립극단도 올 2월1일자로 정진 감독이 전격 사퇴한후 소문만 무성한 채로 세월만 보내고 있다. 시산하 4개 예술단중 두 곳이 ‘과도기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상태다.

시향은 시가 감독 영입을 위한 전단계로 ‘객원지휘자 체제’를 고수함에 따라 이기간 동안 국·내외 지휘자 8인이, 짧게는 1회 연주회만을 위해 오고 갔다.

극단의 경우 역대 예술감독이 제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 해온 전력에, 이번에 예외적으로 ‘자발적인 사임’이라는 형식을 취했음에도 ‘이유있을 만한 사퇴’라는 점에서 외부시선이 곱지 않다.

골머리를 앓아오던 시가 최근 해법을 위한 경우의 수를 내놓았다.
극단은 내부적으로 감독 인선을 마무리, “다음달초엔 영입이 확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향의 경우 객원지휘자중 선임이라는 원칙에 따라 중국의 주오황첸과 이탈리아 출신 오따비오 마리노 중 한명을 선택, 8월말까지 계약을 완료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장의 부재를 더이상 끌고갈 수 없다는 시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추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감독선임이 문제의 완결점은 아니다. 오랜 공백이 불러온 예술단 내·외부 문제가 상존해 있기 때문이다. 예술성이 깊은, 궁극적으로는 인천시민을 위한 예술단으로 다시 서기 위해 가야할 길이 멀다.

▲상반기 공연 부진

인천시향은 올해로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올초 종합문예회관측은 2006년 주요업무계획을 밝힌 자리에서 시향이 6월경 교향악의 진수를 보일 무대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드디어 지난 6월16일, 공표했던 창단40주년 기념연주회를 올렸다. 결과는 혹평이 뛰따랐다. 한 전공자는 “기라성같은 시향단원들이 화음조차 못맞췄다. 너무너무 실망스럽다”고 평했다. 심지어 시향 내부에서조차 이번 연주회가 엉망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립극단은 금년 첫 정기공연을 5월하순에서야 올렸다. 연초 4개 시립예술단 합동공연 ‘뮤지컬 심청왕후’ 앵콜무대가 그 이유가 되기는 했으나, 3월말이나 4월초에 올린 예년에 비해 한참이나 늦었다.
더욱이 나머지 공연계획 일체를 정진 전 감독이 세웠다는 점에서 새로운 감독이 선임될 경우 수정이 불가피하다. 8월로 잡힌 공연도 방향조차 못잡은 채 손을 놓고 있어 상연마저 불확실해 졌다.

정기공연외에 찾아가는 무대 등 여타 기획은 고사하고 단원 교육 프로그램마저 전무한 상태다. 그야말로 ‘휴업’인 셈이다.

▲극단 예술감독의 역할

정진 전 감독은 사퇴직후 “예술감독은 행정가라기보다 각 분야에서 전문성이 뛰어난 인물을 데려오는 것인데 예술적 능력을 발휘하는 것 이외에 행정적인 일처리와 단원훈육까지 능숙하길 원했다. 나에겐 벅찬 일이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그의 사퇴와 관련, 2년 임기동안 단원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놓고 극단을 끌고가고자 했음에도 시의 기대만큼 팀워크를 일궈내지 못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사퇴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일각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정 감독 사퇴의 주 원인이 단원화합 실패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극단이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달 올린 극단 정기공연 ‘여름안개’에 대해 지역 평단에서는 시립만이 올릴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냈다. 이는 배우 연기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해설을 달고 있다. 즉 단원들이 실력있음을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이들 단원들은 왠만한 연출력을 갖추지 않은 감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서를 갖고 있다.

더욱이 감독의 고유권한인 단원평정에 반기를 들었던 경력이 있다 보니 예술단을 아우르고 끌고가기 위해선 뛰어난 통솔력이 절대적인 덕목이다.

경기도립극단 운영방식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3년전 예술감독과 별도로 상임연출자를 두는 2원체제를 택했다. 즉 감독은 여타 행정적인 문제와 단원화합을 위한 예술단 운영에 집중하고, 작품의 완성도 등 제반 창작파트는 상임연출가가 맡는 식이다. 더불어 기획공연은 국·내외 정상급 연출가를 초빙하고 있다.

정운봉 도립극단 감독 직무대행은 “훌륭한 연출가라도 본연의 장르가 있기마련이라 한 색깔로 2년이상 가다보면 배우들이 지루해 한다”며 “이를 위해 상임연출자를 2년 임기제로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작공연과 더불어 찾아가는 공연에 힘을 싣을 수 있는 것도 연출에서 자유로운 감독의 역할에서 기인한다. .

도립은 모세혈관 문화운동, 소외계층 문화나들이, 농촌 초등학교 멘토(예술교육 강사) 프로그램 등 다양한 공익적인 공연을 펼치고 있다. 6월 한달동안만도 찾아가는 공연을 무려 20회나 수행했다는 것이 극단측 설명이다.

▲의욕 잃은 시향단원

시향감독 인선에 대한 인천시 노선은 ‘정명훈 카드’로 일관하고 있다. 일찍이 인맥·학맥이라는 국내 음악계 병폐를 벗어나기 위해 외국지휘자로 눈을 돌린 시는 세계적 마에스트로 정명훈에 주목했다.

2005년 2월 정 감독이 서울시향을 택하자 이번엔 서울시향 부지휘자 번디트 웅그라시와 아릴드 레머라이트 2인을 객원지휘자로 데려왔다. 올들어 초청한 또 다른 3인의 객원지휘자도 정 감독의 추천을 받았다는 것이 인천종합문예회관측의 설명이다. 결국 이들중 한사람이 올 9월부터 예술감독겸 상임지휘자로 발탁될 예정이다.

시는 지난해 100억원대 프로젝트 ‘인천 &아츠’를 시작하면서 예술고문으로 정씨를 선임한데 이어, 2008년 그가 만든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본부를 인천에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서울시향 감독 임기가 끝나는 2008년까지 정씨가 ‘맡고싶은’ 시향으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정 라인’ 예술감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시향 단원들의 생각은 한참 다르다.

3개월 단위로 들고 나는 객원지휘자 체제보다는 하루빨리 단을 통솔할 수 있는 감독 선임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더욱이 음악적 내공이 깊은 지휘자가 선임되는 것엔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초지일관 정명훈에만 집착해온 시의 입장엔 상당수가 수긍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단원들은 실력있는 예술감독과 더불어 예술단에 애정을 갖고 올인하는 인물을 더욱 원하고 있다. 시향 특성상 파트별로 움직이는 체계이기는 하나, 그동안의 장기간 수장 공백이 개별화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체감을 갖고 있다. 이는 적당주의를 양산, 곧바로 실력 하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단원은 “실력 있는 외국감독이 오면 수준은 향상될 수 있으나 단원화합면에선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며 “진정으로 시향에 애착을 갖은 실력있는 인물이 국내 지휘자중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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