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재단이 지난해말 인천문화예술 대표인물 조명사업 일환으로 검여 유희강 선생을 기리는 특별 기획전과 심포지엄을 열었다. 검여 서거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연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예서 그치지 않고 재단은 전시에서 보여준 대가의 예술세계와 당시 심포지엄에서 건져올린 성과들을 한데 모아 이번에 한권의 책으로 묶었다. 재단 예술총서 ‘문화의 창’의 네번째 저서 ‘불굴의 예술혼 검여 유희강’이 그것이다.

인천의 낳은 예술가로 조망하는 시각에서 한발 나아가 추사이래 서예계의 거봉으로서 접근한다. 한국 현대 서예사에서 추종하기 어려운 기념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존재한다.

더욱이 중국 유학, 중국 근대서예를 섭렵한 검여다. 한학과 서화금석학, 서양화 등 두루 공부하며 예술적 외연과 역량을 키웠다. 특히 당시 중국을 대표하는 서예가들로부터 배움을 받았다는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두 부분으로 나눴다. 전반부는 검여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데 치중했다. 후반부는 검여를 회고하는 글들을 모았다. 검여는 인천시 서구 시천동 근기사족인 진주유씨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유완무라는 인물은 백범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백범이 인천에서 옥살이를 할 당시 앞장서서 구명운동을 펴기도 한다. 또 검여의 친척 형뻘인 유희진은 명륜학원 한문강사를 지낸 인물로 역시 해방직후 펴낸 ‘건국과 유교’라는 책에는 백범의 친필 휘호가 들어있다.

백범과의 각별한 친분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이는 이희환 인하대 강사가 ‘백범과 검여, 유완무와 인천의 지사들’이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다. 또 중국 근대서예에 대한 검여의 역량에 대해선 곽노봉 경기대 교수가 ‘검여와 중국 근대 서예’란 글을 실었다.

검여에 대한 회고는 고은 시인의 글이 눈에 띈다 ‘화곡동 시절의 검여선생과 나’를 통해 시인은 반 유신운동으로 뛰어다닐 당시 검여의 화곡동 집 ‘소완제’에 드나들었던 이야기를 소회하고 있다.

인천출신의 큰 인물 우문국 선생의 ‘겸허하고 과묵하던 주붕 검여’와 이경성 선생의 ‘인간 검여의 편모’도 만날 수 있다. 직계 수제자 원중식 선생은 ‘온유돈후, 강의목눌한 모습 속에 유교무류를 실천하신 선생님’이라는 글로 스승을 회고했다.

검여가 살아생전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부록으로 엮었다. ‘완당론’ ‘내 고향의 봄’ ‘좌수서도고행기’ 등 6편을 실었다. 책 말미엔 연보를 붙였다. 이번 총서는 마무리작업을 거쳐 다음달 초 선보일 예정이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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