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조직화된 보건·의료 운동은 81년 산업선교회(산선)가 지역의료팀을 꾸리면서 시작됐다.

인천 산선은 80년 들어 화수·만석·화평동 일대주민을 중심으로 ‘민들레협동조합’을 조직하고 주민운동을 전개했다. 어린이집 운영, 주민 의료사업이 주된 사업이었다. 산선은 20여명으로 의료진을 구성하고 주말진료와 야간진료, 치과진료, 보건상담, 영유아 건강관리 등의 사업을 수행했다.

산선은 90년대 인천지역 의료·보건·산업안전 관련 시민사회운동의 산실이었다. 80년대 초·중반 인천 산선에서 활동했던 수련의,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은 90년대 출범한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산보연),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인천평화의료생협 등의 기반이 됐다.

산선 진료팀으로 활동했던 수련의, 의사들은 80년대 중, 후반 ‘신천리연합의원’ ‘인천의원’ 등을 개업하고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진료에 나서는 한편 산재, 직업병 상담실을 운영했다. 치과진료 쪽도 초기 건치 모임의 중심이 되었던 ‘푸른치과’ ‘인천치과’ 등이 전담인력을 배치하고 치과 산재에 대한 상담활동 등 지역사업을 벌였다.

이들 산재직업병상담실은 노동자 건강, 산재상담을 통해 사례도 연구하고 노동부 등을 상대로 담판을 짓거나 요양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산선에서 구심체를 이룰 수 있었던 인천의 의료사회운동은 이런 경험의 축적으로 노동 현장과 연계되면서 역량을 모아 93년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를 설립했다.

산보연은 산업현장의 안전담당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 설립한 ‘산재없는 일터회’와 양축이 돼 노동자들의 건강 보호와 산재추방 운동 등을 벌여나갔다. 89년에는 기독교청년의료인회 소속 의사들이 부평시장에 평화의원을 설립,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의료문제에 주목하였다.

평화의원은 96년 소외, 차별없는 의료를 주창하며 부평구 부개동에서 평화의료생협을 창립했다. 한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와 건치가 각각 89년, 93년 인천분회를 창립했다. 건약 인천 회원들은 농촌과 소외계층 무료 투약, 고혈압 당뇨측정, 홀몸노인 건강 돌보기 등과 함께 약국서 폐식용유를 수거하고 무공해비누를 공급하는 환경사업도 벌였다.

- 산업안전을 위한 연대

90년대 인천의 산업재해율은 탄광지역인 강원에 이어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산재, 직업병에 대한 예방과 진단, 교육상담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민간 기구가 없었던 때 인천산업사회보건연구회와 ‘산재없는 일터회’는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한 작업환경과 노동자 건강과 관련한 조사 연구에 힘을 모으고 현안에 대처했다.

94년 7월26일 7명의 사망자를 포함, 64명의 사상자를 낸 서구 가좌3동 진흥정밀화학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천지역 의료인과 노동, 시민단체들은 잇따르는 안전사고와 구조적 재해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인천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적인 대응에 나섰다.

대책위는 노동부와 환경처, 인천시 등의 감독소홀 책임을 물어 검찰에 고발하는 조치를 취했다. 대책위는 당시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 아래 기업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산업안전보건 정책이 완화되는 등 전반적인 보건정책의 후퇴로 산업재해가 늘고 있다고 성토했다.

평화의원 임종한 원장 등 인천지역 의료인 51명은 잇단 재해사고에 대해 성명을 내고, 국제노동기구 기준에 맞게 작업의 위험성을 사전 공개하는 유해물질 정보제공제도의 실시하고 작업공정 변경, 직업병 및 산업재해 예방 등 안전보건 문제의 결정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2001년에는 산업안전공단 산하 산업보건연구원이 서구 경서, 가좌동과 남동공단에 산재한 주물업체 근로자 427명을 대상으로 한 역학조사 결과, 13.8%인 59명이 진폐증 환자로 나타났거나 진폐의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마산과 함께 국내 대부분의 주물업체가 산재해 있는 인천은 대부분 소규모 작업장으로 분류돼 작업환경 측정이나 노동자의 건강 검진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등 산업보건 관리에 허점을 드러내온 것이다.

산보연과 산재업는 일터회, 인천환경운동연합, 민주개혁인천시민연대, 인천노동연구원,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등 9개 단체는 2002년 4월 ‘주물산업 노동자 직업성 진폐 대책마련을 위한 인천공동대책위’를 발족시켰다.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주물 진폐의 심각성을 알리고 주물산업 작업환경 개선과 지도감독의 강화, 진폐 관련 법률의 개정을 당국에 촉구했다.

- 경견완 장애 실태 조사·대책활동

95년 8월 한국통신 노조가 전화교환원을 상대로 한 검진 결과, 3천714명 가운데 7%에 해당하는 265명이 경견완(頸肩脘) 장애로 인정을 받았고, 66명이 산재로 인정됐다. 94년부터 신종 직업병으로 산재로 인정하기 시작한 경견완 장애는 이를 계기로 사회적 주목받았다.

공단이 밀집한 인천에선 96년부터 시민사회단체 주관으로 경견완 장애에 관한 조사와 공청회가 본격화됐다. 경견완 장애는 전화교환원 외 전자부품 등 조립공과 컴퓨터 키보드를 자주 두드리는 직장인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이었다.

인천 산보연은 96년 9월 ‘노동환경 변화에 따른 경견완 장애 실태조사’를 시작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아남산업, 고니정밀, 아남정공, 한국사프, 대한마이크로 등 인천, 부천지역 6개 전자, 통신사업장 523명을 대상으로 경견완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6.1%가 목, 어깨, 팔꿈치, 손목에 통증을 호소하는 경견완 장애를 앓고 있으며 허리통증까지 포함 19.6%에 이른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 42.4%는 경견완 장애를 치료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도 드러냈다.

산보연은 97년 11월 ‘경견완 장애 예방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 그 결과를 발표하고 사후보건관리 대책을 제시하며 지역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산보연은 2000년에도 인천대 노동과학연구소, ‘산재없는 일터회’와 대우자동차, 영창악기, 코리아정공 등 8개 사업장 4천2백여명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경견완 장애진단을 위한 보다 정밀한 조사를 벌여 사업장별로 31~48% 가량의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자로 추정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정확한 실상 파악을 위해 노·사·정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통일된 조사방법과 분석방법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 수돗물 불소화 운동

인천지역 수돗물 불소화 운동은 94년 4월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건치) 인천지회가 중점 사업으로 설정해 가두홍보, 자료집 배포와 함께 인천시에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본격화 됐다.

이에앞서 전국 단위의 건치는 93년 6월 구강보건주간을 맞아 상수도 불소화사업 촉구 서명과 함께 각 지자체와 지방의회에 청원서 보내기 운동을 벌여나갔다. 수돗물 불소화사업은 당시 보건사회부가 88년 시범실시를 거쳐 90년부터 5년 동안 전국 22개 도시에서 연차적으로 실시오다 예산이 삭감돼 중단된 상태였다.

건치는 “수돗물에 1ppm 정도의 불소를 섞어주면 해마다 늘고 있는 충치를 60% 이상 예방할 수 있으며, 불소자동투입기 등 설치비 5천만원, 연간 1인당 1백원 정도의 예산이면 충분히 가능한 공중보건 사업”이라며 실시를 촉구했다.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은 건치를 중심으로 연대해 94년 10월 7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수돗물에 불소를 넣어 충치예방을 바라는 인천시민모임’(불소시민모임)을 발족시켰다.

건치는 95년 3월 시민 1만791명의 서명을 받아 시의회에 청원하였다. 그러나 의회의 심의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이에따라 그 해 10월 ‘인천불소시민모임’ 명의로 재청원했다. 재청원 결론은 불소화 시행의 타당성 여부 판단을 위한 용역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용역은 96년 6월 인하대 환경공학과에 의뢰됐다.

97년 1월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용역결과 불소의 과잉섭취로 인한 유해성이 우려된다는 것이어서 사업 시행은 무기 연기되었다.이에 대응하여 불소시민모임은 용역결과에 대한 평가를 위해 서울대, 부산대등 관련 기관에 자문을 의뢰하고 반박 자료를 취합해 각 정부기관, 단체에 발송하며 ‘수돗물 불소농도조정사업’ 조례제정을 위한 10만인 서명운동 등 끈기있는 노력을 기울였다.

98년 7월 생태운동가이며 ‘녹색평론’ 발행인인 김종철 영남대 교수의 문제 제기를 시작으로 불소화는 격한 찬반논쟁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교수는 수돗물 불소화가 ‘강제적 의료행위’라며 사람마다 나이나 건강, 생활습관, 취미 등을 일체 무시하고 불소가 든 수돗물을 모두 마셔야 한다는 것은 독선적 사고방식이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99년 9월에는 각 진영의 전국 연대조직이 동시에 창립됐다. 건치등 102개 시민 환경 노동단체의 ‘국민건강을 위한 시민연대’(건시련)와 녹색연합등 25개 생태환경운동단체가 참여한 ‘수돗물 불소화 반대 국민연대’(국민연대)의 대립구조가 강화돼 교착상태가 됐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울산 등 전국적으로 28개 정수장에서 수돗물에 불소를 투입하고 있고, 인구의 8% 남짓이 날마다 이 물을 먹는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는 미국 등 60여개국에서 불소화한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2005년 6월 여당과 보건복지부가 수돗물 불소화의 전국 확대를 위해 법개정안을 발의했다. 11월에는 인천시의회 주관으로 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수돗물 불소화에 관한 토론회를 벌였다. 그러나 시민·환경단체 간 극단적인 찬반 논쟁을 재연하는데 그쳐, 시의회를 통한 조례 제정 작업은 중단됐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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