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의 하늘이 눈부시다. 비 온 뒤의 깨끗한 햇살이 나뭇잎에 앉아 반짝거린다. 무성한 녹색의 일렁임은 성하의 풍성함을 온몸으로 감사하는 몸짓이다.

그런데 유독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다. 주차장 분리대 역할을 하고 있는 쥐똥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서 있는 은행나무다. 비루먹은 짐승처럼 가지도 잎도 엉성한 나무들을 볼 때 마다 의아했다. 십년 넘은 아파트가 키워온 다른 나무들은 키가 훌쩍 자라서 이층을 지나 삼층까지 넘겨다보고 있다. 그 품 역시 넉넉하니 장성한 자식을 보는 것 같아 흐뭇하다.

그런데 저 은행나무들만 성장을 멈추고 있다. 장대처럼 밋밋하게 올라간 나무 끝에 짤막한 가지가 몇. 그 가지에 살아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애를 쓰는 하잘것없는 잎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나무를 옮겨 심을 때 폐타이어를 오려서 만든 고무 끈으로 뿌리를 감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새끼줄로 묶었더라면 썩어 양분이 되고 뿌리가 뻗어 나갈 수가 있었을 것을 작업의 편의만을 생각해서 고무 끈을 풀지 않고 그대로 묻어버린 것이다. 친친동인 고무줄 사이로 실낱같은 뿌리를 내리고 안간힘을 쓴 덕에 저만치나마 생명을 부지하고 있을 것이다.

주민들 간에 다시 파내어 고무줄을 풀어줘야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앞장서는 사람이 없어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은행나무는 제게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며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작은 수고를 아낀 탓에 저렇듯 어려움에 처한 것이 어디 저 은행나무뿐이랴. 내가 스쳐온 많은 생명 중에 모른 채 지나쳐 온 손길은 얼마나 될까? 마음 한 자락 열어주지 못하고 냉정하게 외면한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을까? 아주 작은 배려로 큰 아픔을 덜어 줄 수 있음을 저 은행나무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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