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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염원의 기운 기념관을 채우다
1980년 10월. 세계건축가연맹(UIA)의 도쿄대회가 오쿠라 호텔에서 열리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건축가들이 참가하는 국제대회에 북측 대표단도 끼어있었다. 그들은 조총련계 건축가들과 함께 어울리며 남측 대표단과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김수근의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드로잉)


한국에서는 KSG를 포함하여 10여 명의 건축가가 참가 하였다. 일정에 잡힌 모든 회의가 끝나고 마지막 날 저녁 무렵, 호텔 연회장에서는 만찬이 어우러지고 여흥으로 각국 참가단원의 즉흥적인 자국 민요 부르기 경연이 펼쳐졌다.

KSG는 네번째로 지목을 받아 단상에 올랐다. 그는 노래 대신 미리 준비해두었던 가슴 속 말을 일사천리로 이어갔다. 말인즉 도쿄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세 종류의 ‘코리안’(북측과 일본의 조총련계 ‘코리안’, 그리고 남측 ‘코리안’)이 지금 작은 원탁에 둘러 앉아 민족의 소원인 통일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론 민족의 통일이 생각 많은 정치가들에 의해서 이뤄진다는 것이 요원해 보이므로 이 자리에서 건축가들끼리 먼저 통일을 해볼까 한다는 요지였다.

“만약 여러분들이 찬성하시고 축하해주신다면 그것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세 종류의 ‘코리안’이 다 같이 무대에 나와서 아리랑을 합창하려 합니다.”

장내에 모여 있던 300여 명의 세계 각국의 건축가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KSG의 제안을 환영했고, 그는 졸지에 세 종류의 코리안 합창단의 지휘자가 되어 감격스런 통일의 노래를 이끌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의 설계를 맡게 된 KSG는 여전히 그 날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공간이 아닌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며 더 이상의 동족상잔의 비극이 없는 평화의 세기를 기원하는 전시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 그날 밤 KSG는 공간사랑 소극장의 극장장으로 재직하던 강JH를 집무실로 불러올렸다.

“강형, 이번에 우리가 인천에다 지으려고 하는 기념관 말이지. 그거 좀 다르게 만들어야겠어. 돈이 많이 들더라도 그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전쟁의 비참한 실상을 알리는 것은 기본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통일의 기쁨, 동족 간의 평화로운 세상의 회복을 일깨우는 분위기를 최첨단의 영상기법을 동원해서라도 극적으로 만들어내었으면 해.”

강JH가 누군가. 1970년대 중후반 서울을 중심으로 소극장 운동에 불이 붙던 시절, 공간사랑 소극장의 극장장으로 역사의 현장을 함께 이끌었던 젊은 피 아니던가.

민속학자 정병호 교수와 더불어 전국을 샅샅이 돌며 팔도의 무속인들을 서울의 소극장으로 끌어 모아 민간의 토속신앙에 기반한 무속 춤의 예술을 정비하였던 바로 그 문화기획자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탄생, 병신춤의 공옥진을 발굴하는 등 쾌거가 이 시기에 나타나는데 그로써 이미 그는 젊은 나이에 우리 굿쟁이들의 삼신아비로 통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 같은 재능을 신임하고 있던 KSG는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의 성패가 건축의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과 전시연출기법에 있다는 것을 수차에 걸쳐 강조하였다. 통일을 위한 화해무드의 전시장. 그것이 이 건물의 컨셉이었다.

1980년 신군부에서조차 KSG의 위력은 여전했다. 지난 20년간 박정희 정권아래에서 여의도개발계획과 세운상가의 도시개조 프로젝트, 남서울종합경기장(현재의 잠실 올림픽주경기장)등을 주도했던 그의 역량은 소위 미래 한국의 도시비전을 제시하는 한국 최고의 건축가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북한 민간인의 교류가 억제됨은 물론이려니와 비상시국 하에서 보다 철통같은 반(反)이데올로기의 감시 하에 있던 그 시절에 국외에서의 KSG의 배짱두둑한 행동이 덮어질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 같은 그의 사회적 지위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던 건축가 KSG가 인천에 남긴 건축물이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유일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KSG가 역동적으로 활약하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까지 국내의 정황은 서울마저도 강북에 집중된 도시개발이 위주가 되었던 시절이었다.

정황이 이러하니 그 시절 인천까지 당대 최고의 건축가가 기웃거릴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1982년 준공되었고, 1985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86년 6월14일 KSG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계속> 글= 전진삼 건축비평가

◆등장인물
강JH(실명 강준혁)=1947년생. 문화기획자, 한국문화의집협회 이사장. 2004~2005 세계평화축전 총감독, 2001 제1회 전주세계소리축제 예술총감독, 1998년 아비뇽 국제예술제 한국주간 예술감독 등 역임.

“저의 30대를 홀라당 ‘공간’에 바쳤습니다만 사실 선생님을 야속하다고 생각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실도, 책상도 없이 설계실에서 제도판 하나를 빌려다 화랑에 놓고 3개월 반 동안 개관 공연 준비 작업을 했고, 개관 후에도 임시로 만든 한 평 반짜리 유리방을 줄곧 극장 사무실로 써야 했을 뿐 아니라, 공간사에 있는 동안에 자신만의 책상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야속하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하지요.

그러나 설계실이 벌어들인 돈을 공간지나 극장이 마구 써댄다는 말이 간부회의에서 나올 적마다 방패막이를 해주시는 선생님께 차마 야속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강준혁,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중 ‘김수근 선생님께 쓰는 편지’, 공간사, 2002)


김경수 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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