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인천은 ‘송도 신도시’와 ‘영종 신공항’으로 상징되는 대단위 개발들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중앙집권의 ‘국책사업’ 이름으로 추진된 굴업도 핵폐기장, 영흥도 화력발전소, 경서동 쓰레기매립지 건설, 송도 LNG 인수기지 확장 등 주민의 삶과 도시환경에 악영할을 미칠 대형 사업과 정경유착의 무차별 개발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려가 높았다.

도시개발과 인구 팽창이 지속돼 대기, 하천 등 도시환경이 이미 피폐해진 90년대 인천에서의 환경운동은 시민들의 관심속에 활력있게 진행됐고 시민운동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95년 2월 고시한 굴업도 핵폐기장 건설계획과 96년 2월 본격화한 영흥화전 건설 반대운동은 이 시점에서 창립된 환경·시민단체들이 연대하고 범시민운동으로 확산시킨 지역의 대표적인 환경운동이자, 지역운동이었다.

인천지역 환경단체는 비교적 빠르게 자리잡아 93~94년 대부분 창립됐다. 인천배달환경(인천녹색연합 전신), 가톨릭환경연구소, 청량산살리기시민모임, 인천환경운동연합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창립과 함께 굴업도 핵폐기장, 영흥화전 등 큰 싸움의 주력으로 나서야했다.

또 계양산 위락단지 조성 및 화약고 건설, 동양화학 폐석회 처리, 경인운하 건설 등으로 점철된 지역의 환경 이슈에 시민사회단체들와 연대,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 감시와 고발, 교육 활동

환경단체들은 창립과 함께 환경오염 실태조사에서 부터 감시, 고발, 교육 등 일상적 환경 운동의 틀을 잡아갔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94년 12월 창립과 함께 인천지역 100대 지점 대기오염 조사 를 시작해 인천시에서 발표한 수치와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밝혔다. 이듬해는 굴포천 하류 수질조사를 벌여 등외 등급의 최악임을 확인했다.

이와함께 창립 첫해 금속부식도 조사, 해수욕장 수질검사 등 환경오염실태 조사를 벌였다. 인천환경운동연합은 이해 환경순찰대, 환경통신원회를 조직, 감시활동에 나서다, 96년 5월 ‘인천해양·하천 환경감시단’ 발대식을 갖고 조사활동을 벌였다. 96년 한해 환경운동연합의 폐기물 매립 및 소각, 공장·차량 매연 등 환경감시 고발은 1천622건에 달했다.

93년 창립한 인천배달환경은 이해 11월 수질, 하천, 해양 분야로 나눠 ‘인천환경감시단’을 결성함으로 조직적인 시민 환경운동에 시동을 걸었다. 배달환경은 창립 후 연이어 영종신공항의 환경 문제를 제기했다.

‘영종신공항 인천시민대책위’를 조직해 국제환경세미나, 신공항건설촉진법 개정운동을 벌이고 94년 2월 삼목도에서 ‘영종신공항 민간환경영향평가’를 발표했다. 이어 신공항 생태환경파괴 현장을 조사하고 삼목도 주민대책위와 산림파괴 등 자연생태계 훼손 감시활동을 벌였다.

96년 7, 8월 녹색연합은 장원 사무총장이 상주하며 최초로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주민 건강, 환경피해조사를 실시했다. 인천 환경단체들은 96년 11월 홍천에서 ‘제1회 인천환경활동가 워크샵’을 열어 교류와 연대를 강화해나갔다.

- 생활양식을 바꾸는 ‘아바나다’

가톨릭환경연구소를 중심으로 인천지역 가톨릭 단체들은 일상 생활 속의 환경 실천운동으로 아바나다운동(아껴쓰고, 바꿔쓰고, 나눠쓰고, 다시쓰기)을 시작했다. ‘일회용 제품은 사지도 말고, 설거지는 쌀뜨물로’ 등을 슬로건으로 몸에 밴 소비지향적이고 자원낭비적인 생활 양식과 습관을 바꿔보자는 운동이다.

97월 6월 107가정이 13개조로 편성해 ‘아바나다 가정만들기 발대식’을 갖고 출범했다. 용현5동, 만수1동, 제물포 등 6개 지역에서 6∼8가정 단위로 소모임을 만들어 매일 자원소비를 얼마나 줄였는지 서로 점검하고 자원재활용 교육프로그램에도 참여하는 ‘환경공동체 생활’을 실행했다.

주안5동성당 평신도 모임이 모체가 돼 94년 11월 ‘밝음공동체’를 창립하고 폐식용유를 재활용해 저공해 순비누를 생산했다. 회원 400여명은 의무적으로 이 비누를 구입해왔다. 가톨릭환경연구소는 아바나다 운동의 전개와 때를 같이해 이 순비누와 세제, 재생휴지를 비롯한 재활용품류, 농수산물 등 환경상품을 개발하고 적극적인 판매운동을 벌였다.

인천YWCA도 98년부터 회관 내 아바나다 상설 매장을 열어 소비문화 개선에 나섰다. ‘아바나다 나눔터’로 호칭된 이곳은 월~금요일까지 문을 열고 지역환경센터이자 의류수선코너, 생협 및 환경상품 코너로 운영됐다.

- 쓰레기 문제해결을 위한 시민운동

95년 1월 종량제가 전면 실시되고 재활용품 수거체계도 갖춰갔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5만톤이 넘는 쓰레기가 매일 쏟아져나왔고 좁은 국토에서 매립지 확보는 한계가 있었다. 특히 95년 당시 인천 전체 생활쓰레기의 35%를 차지하던 음식물쓰레기는 날로 증가했고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주민들은 99년말부터 반입 저지를 선언했다.

가톨릭환경연구소와 인천환경운동연합, 푸른생협, 부평생활자치시민협의회 등 12개 단체는 97년 4월 ‘음식물찌꺼기줄이기와 재활용을 위한 인천시민운동협의회’를 창립하고 올바른 식생활문화와 음식물찌꺼기의 자원화 방안을 강구했다.

협의회는 ‘녹색기술’이라는 시민환경기업을 발족, 음식물찌꺼기의 사료*퇴비화 사업을 추진했다. 한편 정부는 97년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계획’을 수립하고 민간단체와의 협의체를 구성해 범국민운동을 추진,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

인천은 98년 4월 14개 시민·환경단체가 결합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인천시민운동협의회’(쓰시협)를 구성했다. 쓰시협은 쓰레기 발생과 처리의 한계 극복하기 위해 원천적으로 폐기물 발생을 억제하는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위해 소비생활 패턴의 개선, 분리수거에 의한 자원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공동대표에는 김정택 홍성훈 남세종 3인이 선임됐다. 쓰시협은 인천의 전체 폐기물 중 사업장 페기물이 차지하는 비율이 70.2%에 이르고 이로 인한 오염도도 높다는 사실을 밝히고 효율적인 관리 및 감시를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또 관공서를 비롯해 지역에 산재한 소형소각로의 유해성을 지적, 폐쇄 및 특별관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음식물찌꺼기 사료화운동, 녹색벼룩시장·녹색시장, 1회용품 사용안하기 운동을 벌여나갔다. 99년과 2000년에 시행된 음식물쓰레기 사료, 퇴비화 정책은 가축들이 폐사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난관에 봉착, 지속하지 못했다.

- 갯벌 보전운동

개발에 따른 대규모 갯벌 매립과 해양오염은 해양생태계를 위협했다. 88년 남동공단 폐수 방출로 발생한 송도 앞 갯펄 조개 집단폐사 사건에 이어 95년 8월, 송도앞바다 매립 영향으로 엄청난 양의 조개가 집단 폐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자원공사와 농어촌진흥공사가 시화지구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하겠다며 대규모 방조제를 축조해 94년 시화호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곧바로 오폐수로 썩어갔다. 수자원공사는 95년 수억톤의 오염된 담수를 인천앞바다로 방류,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대부도 어민의 분노와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인천의 환경단체들은 96년 6월 시화호 방류 저지 활동을 벌이며 책임자를 고발하는 한편 부영양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바다생태계 영향조사에 나섰다. 환경단체들은 개발에 의한 갯벌 잠식을 경고하며 매립 중단과 갯벌 보전운동에 노력을 기울였다.

인천지역 환경단체와 강화도시민연대 등은 97년 강화도와 장봉도를 잇는 수천만평의 갯벌을 매립해 대규모 관광단지로 개발하려는 인천시의 ‘화북프로젝트’ 에 강하게 반발하고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관광사업으로 육성하자고 제안했다.

환경단체들은 97년 5월 국내외 습지보전단체들과 철새도래지인 강화도 갯벌탐사를 시작했다. 98년에는 시화호~남양만~강화도~영종도에 이르는 갯벌 생태계 조사와 겨울철새 조사가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환경단체들은 이후 강화갯벌의 저어새와 영종, 송도에 서식하는 검은머리갈매기 등 멸종위기의 습지 조류가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갯벌 보존운동에 힘을 모았다. 99년에는 인천시의 장봉도 앞바다 광업권 허가에 따른 생태파괴에 대해 지역주민과 함께 반대운동을 벌였다.

송도, 영종 등 계속된 갯벌 매립의 중단을 촉구해온 환경단체의 주장에 대해 인천시는 2000년 9월 “멸종 위기에 처한 조류 도래지로서, 생산력이 풍부한 수산 자원의 보고로서 자연이 준 거대한 정화장치인” 갯벌을 매립을 비롯한 위협에서 보호하겠다는 내용의 ‘갯벌보호시민헌장’을 제정, 선포했다.

문화재청은 2000년 7월 강화갯벌과 저어새를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했고 해양수산부는 2003년 철새 도래지인 장봉도 연안 모래톱을 인천 최초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조성을 위해 갯벌 매립은 계속 됐고, 2005년에는 채광업자가 해양수산부를 상대로 낸 장봉도 습지보호지역 지정고시 취소 소송에서 행정법원이 원고승소 판결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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