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전봉건 작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청각 이미지를 이처럼 선명한 시각 이미지로 바꾸어 보여 주는 시도 드물 것이다. 여자의 길고 흰 두 손이 건반을 두드리고, 그 피아노 연주 소리는 손가락들의 재빠르고 현란한 움직임과 함께 마치 물에서 금방 건져 올려 퍼덕거리고 있는 물고기의 비늘 빛처럼 싱싱하다. 이윽고 피아노 속에서 튀어나온 빛은 꼬리를 물고 쏟아져 바다 전체가 된다. 그리고 이번에는 바다에 파도가 인다. 그것은 시퍼런 칼날처럼 날카롭다. 연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서정적 자아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든다.

이렇게 이 시는 ‘여자의 손가락→ 물고기→튀는 빛의 연속→바다→파도→칼날’이라는 감각적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음악 소리는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고 눈에만 보인다.

시가 자기의 한 본성으로 누리고 있는 비유의 영역, 그 하나 공감각적 비유의 최고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는 실험적 기법과 과감한 비유를 통해 순수 이미지 추구에 몰두했던 감각적이고 주지적인 전봉건의 대표작 중 하나다.

김윤식 시인 · 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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