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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2월 15일 일간지 재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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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포럼-거울 속의 여자
작고 좁은 아파트에선 날마다 봄을 기다린다. 이혼한다고 떠나버린 그녀가 잠시 휴식을 위해 친정에 갔다고 믿고 싶다. 한때 방종했던 그의 남편에게도 각성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억지를 부리고 싶다.

주택가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있는 저층 아파트. 결혼 초 남편의 직장 가까이에 집을 덜컥 계약을 하고 나니 보일러부터 말썽이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커튼으로 막았지만 마음 안 황소바람은 서글프기만 하였다.

그해 겨울 낡고 좁은 아파트는 유난히 추웠다. 오들오들 떨며 나그네처럼 서성이는데, 하늘거리는 상냥한 웃음으로 커피와 간식을 가지고 온 이웃에게 첫 눈에 반해버렸다. 나처럼 무뚝뚝하지도, 밉지도 않은 맑고 투명한 거울을 보는 듯한 여자였다.

내 얼굴도 거울에 비춰보았다. ‘쌀쌀맞다, 냉정하다, 차갑다’ 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남들보단 정이 부족해서였던가.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던 다혜 엄마는 내게 해맑은 햇살로 다가왔다.

그랬다. 그녀는 어느새 내 거울이 되어 있었다. 화장대의 동그란 거울 속에 부족함 모르고 예쁘게만 비춰지던 내 모습이 나만의 착각임을 보았다. 내가 그저 거울 속에 도취되어 이웃을 모르는 교만과 이기심 덩어리로 자라나고 있을 때, 다혜 엄마는 나의 마음 속 거울을 꿰뚫어 본 장본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젊고 발랄했다. 남의 일에도 적극적이었다. 어느 날이던가. 시장에서 장사하던 3층집이 부도가 났을 때의 일이다.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다. 그러자 그녀는 그들의 식구들을 피신시켜주었고, 잠을 재워주기까지 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남은 세간도 남에게 넘어갈까, 옥상 창고에 몽땅 감춰주기까지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한 폭의 수채화에 담겨있는 성싶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아이에게 옷가지와 용돈을 꾸준히 챙겨주고 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야 듣고 우두망찰할 말이 없었다. 그랬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도와주고, 먼저 달려가 주고, 먼저 위로해주었다.

그러구러 그녀와 대문을 열어놓는 사이가 되었다. 차를 만드는 그녀의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어느 날 밤 그의 초대를 받고 가보니, 색색의 촛불을 장식해놓고 보글보글 찻물을 끓이고 있었다. 고요한 시간에 둘이 나눠 마시는 차는 맑은 달빛이나 흰구름을 벗 삼은 듯하였다. 머그잔 안에 모과차의 향기처럼, 그녀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종종 하얗게 밤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시도 때도 모르고 공깃돌 들고 찾아가던 어릴 적 친구처럼 편안하고 부담 없던 그녀가 사라진 것이었다. 사업가인 남편은 일 주 일에 한두 번 고작 집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그녀 남편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들어 본 일이 없다. 그런 사이 밤을 지새우는 순수한 동성간의 사이가 되었건만.

어떤 날은 그녀가 책을 밤새워 읽었는지 두 눈이 퉁퉁 부어 있기도 했다. 아니면 밤 도깨비처럼 밤새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는 나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야심한 밤에도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티끌하나 없이 집안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녀가 그런 내적 감각을 보이건만 나는 도무지 그런 그녀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있었다. 열정이 남아 밤새도록 책을 읽어대는 줄 알았고, 잠이 없어 밤새도록 청소를 하는 줄만 여겼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으려고만,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삶의 거울로만 보았을 뿐, 그녀의 마음일랑은 깊게 헤아려주질 못했다.

자신의 아픈 마음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랴. 더구나 남편과의 일에 이르러서야. 내 그때 좀 더 폭넓은 질그릇으로 그녀를 감싸주었더라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그녀는 친정으로 떠나갔다. 내가 갖추지 못한 자신의 것을 내게 다 주고 맑고 투명한 거울 속으로 사라지듯.

오늘도 나는 거울을 마주하며 그 안에 내 모습을 투영해 본다. 낯익은 듯 낯선 여자가 그 안에 들앉아 있다.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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