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생을 몸 바친 관세청을 떠난다니 아쉬울뿐입니다.”

재무부 세관국에서 관세청으로 새롭게 발족된 지난 1970년부터 37년간 관세국경의 수문장 역할을 한 인천공항세관 조사총괄과 이염휘(60) 과장이 이달 말 명예퇴직을 한다.

관세청의 산역사인 이 과장은 여수세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 37년동안 전국 공·항만에서 근무했다. 밀수사범을 단속하는 조사업무를 25년간 수행했다.

이 과장은 지난 70년대 외국에서 쌀과 밀가루, 옥수수 등의 원조물자를 받을 때부터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컨테이너 밀수까지 밀수품목과 수법도 시대마다 달라진다면서 밀수 단속 노하우의 보따리를 풀었다.

“70년대 원조물자를 받을 때 일본인들은 소위 ‘선물(일명·뇌물)’을 줘야 세관을 통관하다고 헛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사람들을 미워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우산, 흑백 TV, 액정 전자시계, 가죽제품 등을 일본 대마도 같은데서 출항허가없는 배들이 선원 등을 통해 밀수했습니다.

80년대는 보석, 시계, 의류 등 명품이 주를 이뤘으며 90년대는 바나나와 참기름 등을 가공한다고 들여와 파는 농수산물이 유행했습니다.”

이 과장은 기억에 남는 사건은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대사관의 물건은 검사가 안된다는 것을 안 밀수꾼들이 도미니카 등 7개 외국대사관 명의를 도용, 의류 등을 이사화물로 밀수하려던 것을 일망타진한 것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대문 시장을 단속하면 상인들로부터 수많은 저항과 유혹을 받았는데, 이에 타협하지 않아 ‘법대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공항에서는 보따리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 ‘저승사자’라 불리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이 과장은 지난 98년부터 2004년까지 7년간 밀수검거 실적이 2천500건에 8천억원대로 관세청의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엄청난 단속실적을 남겼다. 그는 실적보다는 밀수를 차단함으로서 국내산업보호의 첨병 역할을 한 것이 더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밀수사범을 쫓다보면 한달 평균 15~20일은 집에 들어가지 못해 가족들에게 늘 미안했다”는 이 과장은 가족에게 미안했던 것보다 관세청을 떠나는 마음이 더 아프다며 내심을 털어놨다.

“관세 조사업무는 조사자들이 밀수범들에게 ‘진실’을 보여줘야 이들도 진실을 얘기한다”며 후배들이 남보다 더 많이 뛰어야 한다는 희생정신과 열정을 갖는다면 관세조직은 지금보다 더욱 많은 발전을 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그러면서 그는 관세청이 정부의 최고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준철기자 terryu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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