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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2월 15일 일간지 재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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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포럼-우산 사이로
비가 오신다. 창문에서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눈물처럼 녹아내린다, 그 창문에 흐르는 눈물까지도 내 것으로 하고 싶던 소녀 적 나이는 지났건만, 빗소리가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비 오는 소리가 부침이 부치는 소리와 같다던가. 그래서 이런 날이면 빈대떡이나 부쳐 먹는다고 노래하나 보다. 나도 부추 부침이를 하려고 밀가루를 사러가기 위해 우산을 찾는다.

오래된 우산 한 개를 펼치니 살 하나가 꺾여있어 하늘 한 쪽이 찌그러져 있다. 다른 자동 우산 하나를 펼치자 그 역시 찢어지고 뜯어져 있다. 이런 우산을 왜 안 버리고 두었을까 싶어 쓰레기통 옆으로 냉큼 치워놓는다. 퇴임식에서 받은 세 번째 우산을 펴자 기계적으로 접혀있던 새 우산에서는 새 냄새가 난다. 기분도 상승된다.

우산을 쓰고 바람 부는 거리로 나선다. 머리와 어깨만 젖지 않을 뿐 비바람의 폭을 다 감당 못 하는 것이다. 신발과 바지가 스폰지처럼 무서운 속도로 빗물을 빨아들이는가 싶더니 비바람 앞에서는 새 우산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갑자기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우산이 그만 뒤집어져 항복을 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선다. 어쩔 수 없이 버리려던 그 우산을 다시 끌어다 받고 현관문을 나서자니 틈새로 비가 스민다. 빗물이 우산대를 따라 조르르 손잡이까지 미끄럼을 타며 묘기를 부린다.

문득 내 지나온 날들이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은 것이 사람 살아가기인 것처럼 찢어진 우산 사이로는 찢어진 하늘을 보고, 뜯어진 우산 사이로 하늘을 본다. 미어진 우산 틈으로는 풀린 올에 걸린 비 오는 하늘이 보이질 않던가. 그러다보면 부러진 우산도 있겠거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산 밖은 내다볼 줄 몰랐던 것이다.

드넓은 세상을 가리고 안일하게 홀로 군림하려 했던 건 아닐까. 빗물처럼 흘러가지는 못하고 우산만한 틀 안에서 사랑을 받기만 하고 주변의 대부분을 차단시킨 것은 아닌지 상념에 젖어본다.

혹여, 그 작은 울안에 나를 가두고 튕겨져 나가는 말들로 가족과 이웃을 힘들게 할 때가 있지는 않았는지. 아니, 그만큼의 내 잣대에 맞춰주지 않는다고 말끝마다 퉁을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우산을 쓸 때가 있는 법, 그 비가 무섭고 바람이 무섭다면 그게 바로 온실 속의 나약한 인화초요 즈음의 안일한 내가 아니랴.

비 오는 날이 있으면 비 개인 날이 있을 터.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우산이 부러지면 부러진 대로 창문에 빗물이 다이아몬드처럼 흐른다 해도, 아니 끈적이며 흐른다 해도 때론 있는 그대로 안아주고 받아주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다시 보면 그 창문의 눈물은 맑게 씻어내는 작업 중이 아니었을까. 지금 내 나이 중년을 넘어 정화할 건 정화해야 하는 나이지, 까탈을 부릴 나이가 아닌 것처럼.

다시 보니 미어진 우산 사이로, 몇 개의 빗방울 위에 화가의 빠레트 같은 무지개가 보인다. 비가 만들어낸 비 꽃이다. 빗방울은 초를 다투는 순간을 꽃피우기 위해 그토록 세차게 맞아야 하나 보다. 그 빗물이 빗방울 꽃으로 피어있기까지는 실로 찰나의 순간이다.

눈깜짝이는 순간을 꽃피우기 위해 왔다 가는 빗방울에 비하면 세상 넓은 줄도 모르면서 나의 끝 간 데 없는 욕심, 분노, 실망은 참으로 부끄럽다.

내 우산에서 굴러 떨어진 빗물이 지상에서의 여러 빗물과 손을 잡는다. 그 빗물이 모여 흐르다 바위를 피하고 길이 막히면 새 길을 뚫는다 했으리라. 새 길로 들어선 빗방울이 눈물 한 방울만큼 튀면서 피는 꽃, 그것이 어디 빗방울뿐이랴. 마치 개그맨이 관객을 웃기기 위해 열 번 울어야 우리가 한 번 웃는다는 모습과 같지 않은가. 장애우 피아니스트가 몇 십 분간 무대에 서기 위해 수십 년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듯이 참으로 힘든 고난의 결과이리라.

상념을 깨고 슈퍼에서 물러나오며 젖은 우산을 다시 편다. 찢어진 우산 사이로 빗물만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아득바득 앞질러 가려던 우리네 삶이 무지개 빛으로 달리 보인다. 그나마 찢어진 우산도 없는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나 같이 쓰고 오면서 갈 때와 올 때의 차이를 생각해본다.

비 오는 날 물 위를 걷다가, 때로는 여우비를 보며 웃기도 하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울기도 하며 그렇게 사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리라.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해가 나면 양산을 쓰듯이 순순히 물처럼 흘러가야 하련만 나는 내 좁은 영역 안에서만 살고자 했다.

얼마 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워드 선수의 어릴 적 궂은 환경도 비바람 부는 시절이 아니었으랴. 마치 찢어진 우산 사이로 그들을 바라본 듯 지나간 그 모자의 아픔을 조금은 헤아릴 것 같다. 또한 그를 향한 우리네 관심이 반짝 사랑만은 아니길 바라며 나는 아직도 그 비를 사랑하는 늙은 소녀였음을 알겠다. 이제야 미어진 우산 사이로 보이는 세상도, 먹구름 속의 햇살처럼애틋하게 바라볼 넉넉함이 생긴다. 특히 비가 오시는 오늘 같은 날이면.

인천신문  i-today@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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