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벽을 배경으로 작품들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깔끔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것들이다. 사진이라기보다는 한결같이 한 폭 아름다운 수묵화 같다.

사진 속, 짙은 안개 속에 허공을 가로 지르는 한 가닥 아스라한 전선이 사람들의 염원만큼이나 간절해 보인다. 희미한 안개에 가려 겨우 그 형태만 드러낸 여백이 많은 사진들은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구체적인 형태가 생략된 사물들, 어쩌면 그것이 더욱 본질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시선을 통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비로소 생명을 얻고 하나의 의미로 전달되는 것을 본다.

물과 빛과 자갈들. 사진 속에서 그것들은 각각의 다른 형태이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빛 돌 물이 어느 한순간 합해져 이렇게 기묘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 내다니,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할만하다.

사물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는 방법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 다른 느낌으로 와 닿기 때문이다. 그것은 새로운 아름다움이다. 개개의 특성과 형태를 갖고 있으면서 한순간 다른 사물과 결합하여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내게 하는 사진의 기법은 충분히 매력을 느끼게 한다. 셔터가 돌아가는 순간 오르가즘을 느낀다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칼라 사진은 적나라하게 그 모든 것을 드러낸다. 감춤이 없고 상상의 여백도 없다. 아주 리얼하게 눈으로 포착해 내지 못한 사물의 구석구석을 드러낸다. 여운은 없지만 그만큼 현장에서의 느낌이 강렬하다. 자연과 인간, 문명과 자연을 대립시킨, 매향리 사건을 고발한 한 사진작가의 사회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그 이후 다시 그 곳의 아름다운 정경을 대상으로 찍은 그의 사진들은 자연과 인간의 화해를 이끌어내고 싶은 평화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잘된 작품은 그것이 사진이든 그림이든 다른 무엇이든 같은 정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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