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에서나 나올법한 낯선 직업이 돼버린 ‘대장장이’.
대장장이는 벌겋게 달아오른 불길에 쇠를 달구어 날카롭게 벼리기도 하고, 새 물건을 만들기도 했다.

인일철공소의 송종화씨(69·인천시 중구 도원동). 그는 인천 유일의 대장장이다. 연륜이 무려 53년이니 자신같은 대장장이는 전국적으로도 드물 것이란 게 그의 말이다.
“옛날식으로 하는 대장간은 여기밖에 없어. 나야 수 십년 단골들이 그런 얘기를 해주니까 알지. 여기서 일 배워 여기서 계속 일했으니까 다른 데는 잘 몰라.”

‘지지직~ 지직.’ 괴탄을 넣은 작은 용광로 불길속에 놓였던 쇠파이프가 물에 닿자 거친 숨소리를 낸다. ‘땅, 땅, 땅, 땅’ 담금질한 쇠가 식기 전에 원하는 모양을 만드느라 2㎏이 넘는 망치를 연신 내리치는 송씨. 칠순을 앞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쇠를 다루는 힘이 매섭다.

“도원동을 그때는 한골고개라고 했어. 대장간들이 몰려 있었지. 1953년 나는 한국철공소라는 데서 일을 배우고는 그 주변에서 내 가게를 차렸는데 그게 벌써 반세기 전이니….”

대장장이의 진가는 담금질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 달군 쇠를 물에 담가 그 강도나 성질을 조절하는 것은 오랜 숙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노하우다.

“만수동에서 여기까지 왔어요. 부엌칼 좀 사려구. 배다리에 살 때부터 여기 단골이었으니까 한 30년 됐나?” 연로한 할머니 할아버지는 “진짜 대장장이가 만든 이 집 칼은 아무리 오래 써도 이가 나가지 않고, 숫돌에 갈면 막 산 것처럼 날이 서는데다 가볍고 튼튼해 최고”라며 엄지를 세웠다.

20년 전까지는 그래도 호황이었다. 직원 4명을 두고도 일이 밀렸다. 공업단지가 몰려있던 항구도시 인천이다보니 공업용, 해상용에 농업용 기구까지 주문이 참 많았다. 지금도 가게 한켠에 가즈런히 놓여있는 닻, 원목용 대형 집게, 곡괭이, 낫, 호미가 지나간 시절을 조용히 말해준다.

그의 실력과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이 꾸준히 주문을 하는데다 과거보다는 힘이 덜 드니 그는 지금도 가게 문을 항상 연다. 손으로 일일이 해야 했던 풀무질이며, 무거운 쇠를 규격에 맞게 자르는 일 등을 기계가 대신 해주는 덕이다.

“어깨가 제일 아프지. 날이 궂은 때는 더 아파. 그렇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이것밖에 배운 게 없으니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해야지. 나이 먹었다고 손 놓으면 안돼.”

바로 옆 건물에서 ‘인천철공소’를 운영하고 있는 친동생 종원씨(63)는 “형님은 대장간 일을 천직으로 알고 성실하게 원칙대로 살아오신 분”이라며 “가족들도 그런 형님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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