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들어 국내 정책의 화두가 ‘문화’로 쏠리면서 정부차원에서 추진되는 대규모 문화프로젝트가 눈에 띄게 다양해졌다. 번뜩이는 기획력과 저돌성 있는 실행력을 바탕으로 완결된 주목받는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면 여러번 겹쳐 등장하는 문화기획자를 만날 수 있다.

그들중 한사람이 조영신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사무처장이다.
프로젝트마다 직책을 갈아입는 연유로 불리는 호칭이 유독 많은 그다. 가까이는 광복60주년 문화사업추진위원회 사무국장부터 문화관광부 문화의 달 행사 총연출, 민족평화축전 총괄팀장에 이르기까지.

매번 일을 맡을 때마다 ‘시민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고민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아이디어 도출도 중요하지만, 이를 구현해 안착시키기 위해선 바탕에 진정성을 깔아야 한다는 것이 기획자로서의 그의 원칙이자 추구점이다.

▲굵직한 문화축전을 총괄하다

“정부 기금으로 치러진 대규모 축제를 맡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2003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민족평화축전’이 시발점이죠. 저의 특기가 축제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일이었고, 10여년동안 줄곧 크고 작은 행사를 만들어오다보니 그 즈음엔 나름대로 이력이 쌓였습니다. 총괄팀장을 맡으라 해서, 해보자 했습니다.”

민족평화축전은 통일부와 문화부, 대한체육회, 제주도가 연동해 주최한 남북문화행사다. 컨셉을 체육과 문화의 결합으로 잡았다. 당시 북축 선수단 200명이 제주에 내려와 남녀공동축구, 탁구, 태권도 시범, 예술 공연을 1주일동안 펼쳤다. 8개월여 준비해 만든 축전이다.

축제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일이 주어졌다. 각국 민간단체 모임체 ‘국제문화다양성연대’ 총회가 2004년 한국에서 개최키로 결정됨에 따라 국내 민간단체를 총괄하는 인물이 필요했다. 해서 맡은 직책이 사무처장이다.

“미국의 획일적 자본주의 문화에 대항해 프랑스, 캐나다, 아프리카, 중국, 일본, 제3세계 국가들이 문화다양성을 기치로 내걸고 아젠다를 어필하는 민간기구입니다. 3차총회를 한국에서 열게 됐죠. 당시 67개국에서 700여명의 문화단체 대표와 실무자들이 모였습니다. 한국에서는 16개 문화·예술단체가 참여했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행사를 만드는 일을 맡은 겁니다.”

더 있다. 광주에서 연 ‘2004 문화의 달 행사’는 두고두고 기억나는 축전이다.
서울 일변도, 그것도 시상식 중심의 틀을 깨자는 목표로 치러진 행사다. 추진위원회가 꾸려지고 어김없이 총연출이 그에게 떨어졌다.
헐헐단신으로 간다. 지역성이 발현된 행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지역 젊은기획자 20명을 뽑았다. 머리를 맞대고 그림을 그리고 틀을 짰다.

“단순히 행사 하나를 지역에 유치하는 차원을 넘어 행사를 열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내가 한 프로젝트중 아주 기분 좋은 축제였죠. ” 호평이 따랐다. 많은 시민이 축제에 와서 즐기고 유쾌한 기억을 지니고 돌아갔다.

지난해는 내내 광복60주년 기념사업에 매달려 살았다.
문광부는 2005년 해가 열리자마자 광복60주년 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처음에 그는 아이디어를 내는 자문위원으로 가담했다. 그런데 덜컥 상근 실무 총책임자로 임명된다. 사무국장으로 낙점된 것이다.

한해동안 추진위 직접사업으로 혹은 간접사업으로 치른 아이템이 60여가지에 이른다. 그중 공들인 사업으로 ‘겨레문화 창의단’이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강제 이주 지역을 찾아가 그 곳 문화를 배우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이민 1세대는 이제 역사기록속으로 사라졌어요. 4세대, 5세대에게 다가가자 했죠. 현지화된 그곳 청소년들 우리국민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다만 내재적으로 대한민국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죠. 현지사회에 적응해 중심인물이 된다면 그것이 곹 글로벌입니다.”

프로젝트 참가를 지원하는 청소년 100명을 뽑았다. 쿠바와 멕시코, 사할린, 우즈베키스탄, 연변으로 나눠 보냈다. 그곳에서 청소년들과 먹고 자면서 서로 문화를 배웠다. 답방이 이어졌다. 그곳 청소년들이 국내에 들어와 문화를 또다시 보고 느꼈다.

“한해 사업이 아닌 장기 전망을 가진 프로젝트로 끌고갑니다. 올해는 40여명이 쿠바, 멕시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연변으로 나갑니다.”
치르는 행사만큼 문화기획자로서 명성이 차근차근 쌓여간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의 전당’ 프로젝트를 준비하다

지난해 말 광주 도청 자리에서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 기공식이 열렸다. 이를 기점으로 대통령이 공약사업으로 내건 광주 문화중심도시 건설이 속도를 달게 됐다.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실행팀이다.

“광주지역 문화가 아시아 중심문화로 주목받을 수 있을까, 이를 푸는 키는 ‘교육과 연계돼야 한다’ 입니다. 역사적 보수성을 갖은 교육과 미래적이며 창조성을 갖은 문화를 접목시키는 겁니다. 답은 문화가 깃든 교육이죠.”

설명을 계속 한다. 목표가 정해졌으므로 이제 컨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어린이 지식문화센터로 잡았다. 박물관형태를 넘어 최소한의 창조성을 고양시킬수 있는 역동적인 공간을 꾸민다는 구상이다.
“2014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센터를 정확한 꼴로 안착시키기 위해선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기획자 경험을 쌓다

그가 대형 프로젝트를 무리없이 진행시킬 수 있는 기반은 수많은 현장경험에서 비롯된다.
한국민족음악인협회 사무처장을 8년동안 맡으면서 셀 수 없는 공연과 축제를 만들고 치렀다. 청소년 어울마당, 새터민·교도소 공연, 휴양림 산속음악회, 지역축제를 예술적으로 꾸미는 일까지 한해 평균 40여건을 해치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가 ‘이효석문화제’ 전야제 공연입니다. 백일장이라는 단일주제로 치러지는 행사의 문을 여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정적인 분위기를 시각화하고자 했지요. 서정성을 해치지 않는 공연이 목표점이었습니다.” 여섯번 답사를 가 고민을 한다. 이후 5년동안 전야제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학생운동이 인천 문화운동으로

20대 청춘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점철된다. 82년 대학에 입학, 끌리듯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85년 미문화원 점거사건에 연루돼 구속된다.

“기소유예로 풀려났으나 학교보다는 현장을 택했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므로 고향에서 노동운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독노동자연맹을 조직하는 일에 관여한다. 집회를 위한 율동과 노래를 만들고 그날의 연설에 맞춰 촌극을 짰다.

기업마다 노동조합이 속속 조직됨에 따라 노조 농성지원에 나선다. 마찬가지로 노래와 율동, 풍물을 가르치고 문화집회를 엮는다. “노동자 집회를 1년동안 100여회 따라다녔어요. 사전집회를 담당하다보니 사회도 봤죠.” 80년대를 그렇게 살았다.

▲인천축제에 대한 제언

무수한 축제를 기획하다보니 고향 인천에서 행해지는 크고 작은 축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다. 안타까움이 많다.
“항구도시로서 물물교류가 활성화, 이는 다분히 상업성을 특성으로 갖게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항구와 달리 인천은 산업이 기반입니다. 근로자의 삶, 이들의 생산에 근저한 지역공간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죠. 그러므로 이들과 유리된 행사를 만드는 것은 안된다는 겁니다.”

인천춤축제와 송도 트라이포트 락페스티벌, 송도 국제첨단도시 프로젝트를 겨냥한 축제까지 모두 실패 할 수 밖에 없다고 꼬집는다.

“인천시는 생활기반이 축적된 곳이 어디인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이 축제를 통해 지역의 진정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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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신은…

▲1963년 인천출생 ▲1982년 성균관대 국문학과 입학 ▲1997~2004년 한국민족음악인협회 사무처장 ▲2003년~현재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사무처장 ▲2000년 5월 ‘광주 5.18 20주년기념 문화제’ 총기획 ▲2003년 2~10월 ‘민족 평화축전’ 총괄팀장 ▲2003년 11월~2004년 6월 ‘국제문화다양성연대 3차총회’ 사무처장 ▲2004년 9~10월 문화관광부 ‘광주 문화의 달 행사’ 총연출 ▲2005년 1~12월 문화관광부 ‘광복 60주년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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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만날 사람 /양원모 경기문화재단 북부사무소 소장

내가아는 양원모는…

인천지역 문화운동의 1세대이며 대부다. 따라서 운동의 역사를 한눈에 꿰고 있다. 또한 문화운동의 경험이 다기하다.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이 많다. 나아가 시스템화하는 아이디어를 많이 갖고 있다. 전통문화재교육에 대한 접근방식을 한 예로 든다면 장인이 갖은 문화적 정수를 직접 전달하는 대신, 예술교육메카니즘이 무엇인가 고민해 실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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