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서연희(가명, 여·14)는 누가 봐도 문제아다. 또래 보다 작은 체구에 깡마른 외모, 부정확한 발음만으로도 ‘왕따’의 조건을 다 갖췄다. 선천적으로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연희는 그 동안 네 차례나 수술을 받으면서 여러 번 학교를 쉬어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나 자연히 학교 공부도 뒤처져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지 오래다. 이미 오래전 학교생활에 흥미를 잃은 연희는 PC방과 만화방 등을 전전하다 주머니 사정이 궁해 몇 차례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적도 있다.

더욱이 2년 전 허리를 다친 아버지가 일보다 술로 보내는 시간이 늘자 최근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버렸다. 아직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지만 연희는 사실상 외톨이나 마찬가지다.




(▲인천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는 또래상담자교실, 집단따돌림예방교실 등 상담사업을 실시, 청소년들이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현장에 직접 나가서 청소년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진제공=청소년상담지원센터.)

이를 눈여겨 본 동사무소 직원의 소개로 연희는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YC, Youth Companion)은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을 직접 찾아가 돕는 맞춤형 서비스다. 국가청소년위원회 산하 프로그램으로 인천시에서는 청소년상담센터 내에서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 동반자’는 청소년 상담사, 청소년지도사, 상담심리사, 직업상담사 등 자격증을 소지한 전문가로, 심리적 안정을 위한 지원은 물론 기관연계를 돕고 있다. 2005년 시작된 프로그램에 인천시는 작년부터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봄, 연희는 동반자들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이후 평균 일주일에 한번 동반자들을 만나면서 차츰 달라졌다. 연희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림치료. 종이 위에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그리고 가위로 오려내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치료의 과정을 통해 연희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11월 21일까지 총 7개월 여 동안 약 25회 만남을 가졌다. 술에 의지해 살고 있는 연희 아버지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뤄졌다.

그러는 동안 연희는 학교 친구들과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 모르는 문제를 질문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아졌다. 동반자들은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연희가 학교와 가정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학습자원봉사자를 연계하고 미술학원비, 후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집단 따돌림, 학교폭력, 성폭력, 가정불화 등으로 청소년 동반자와 인연을 맺은 청소년은 414개 사례. 찾아가는 상담 1만2천306회와 교육 2천267명 등을 포함하면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동반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현재도 30~40명의 위기 청소년이 도움을 기다리고있다.

문을 연지 1년 만에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위기청소년을 구조하기 위한 다각적 시스템 덕분이었다.학교, 가정 등 청소년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주1회 찾아가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부모, 선생님 등 문제 해결에 열쇠를 쥔 사람들과의 교육과 상담도 함께 이뤄진다.

동반자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다. 2006년 한 해 청소년 동반자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문제 해결에 YC가 도움이 되었다고 답한 청소년이 96%에 달했다. 또 이용하겠다고 답한 청소년도 87.8%로 나타났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는 만큼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방법은 개인의 경우 청소년 전화(1388)로 신청하고 기관의 경우 첨부된 의뢰서를 작성한 후 접수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청소년 전화나 인터넷 홈페이지(www.inyouth.or.kr)로 문의하면 된다.

고민 참다보면 우울증 즉각적인 해결 바람직


홍나미 청소년상담센터 팀장 인터뷰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적이지요.”

청소년상담센터 홍나미 팀장은 요즘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청소년전화 1388 등을 이용해 고민을 털어놓는 청소년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을 신청한 청소년들도 줄을 서 있다. 눈코 뜰 새 없지만 그는 오히려 기쁘다는 표정이다.

“예전에는 쌓이고 쌓인 고민을 풀어놓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어제 일어난 문제를 상담해 오는 경우도 많아요. 반응이 즉각적이라는 얘기죠.”

문제가 오래 쌓이면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해 도움을 주기에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민을 참고 견디는 아이들은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울증 증세까지 보인다고 한다.

“얼마전에는 조손가정에서 자란 한 청소년이 상담을 요청해 왔어요. 공부를 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학습자원봉사자와 공부방 등을 아이와 연계해 줬어요. 기뻐하는 아이를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가끔은 왜 참견이냐며 개입을 거부하는 청소년과 부모들도 있다. 부모들이 찾아와서 무조건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할 때는 속이 상한다. 반대로 ‘신경쓰고 싶지 않다’며 나몰라라 하는 부모도 있다. 그래도 홍 팀장은 자신을 찾는 청소년이 있는 한, 한 밤 중에라도 뛰어나갈 각오가 돼 있다고 밝힌다.

“상담사들 끼리는 ‘튜닝’한다고 표현을 해요. 아이들 수준을 잘 맞춰야 마음을 열거든요. 청소년들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면 그들에게 다가가기가 더욱 쉬울 거예요.”

긴급구조·동반자 사업 청소년 자활 적극 도와


인천 청소년상담지원센터는···


5월은 가정의 달이자 청소년의 달이다. 이는 건강한 가정과 건전한 청소년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아쉽게도 인천은 청소년 범죄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서울이 인접한 지리적 여건 상 전국에서 가출청소년이 모여드는데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지역이 많아 이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위기 청소년’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이다. OECD는 위기청소년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함으로 인해 직업인이나 성인으로서의 삶을 성취해 내지 못할 것 같은 청소년’으로 정의하고 있다. 증가하는 위기청소년을 구조하고자 인천시도 팔을 걷고 나섰다.



인천의 대표적인 청소년지원기관은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센터에서는 청소년 상담을 비롯해 복지 및 활동증진을 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연계한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상담사업은 물론이고 긴급구조사업, 청소년 동반자 사업 등 위기에 빠진 청소년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적이 떨어지고 공부에 집중이 안될 때 ▲자신도 모르게 반항적이 되고 화가 날 때 ▲주변 아이들이 소외 시키고 무시할 때 ▲원조교제의 유혹이 있을 때 ▲가정폭력으로 혼자만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등 센터는 청소년이 갖고 있는 모든 종류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반응도 좋은 편이어서 해마다 상담 건수도 늘고 있다. 작년 한해 이뤄진 상담은 총 13만6천772건, 집단상담이 90% 이상을 차지했다. 상담내용별로 보면 진로 관련 상담이 51.2%이고 비행(29.7%), 대인관계(5.9%) 등이 뒤를 이었다.

나머지 10%가 일시보호소나 청소년동반자 프로그램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다. 이 경우 가출 등으로 위험에 노출 돼 있거나 반대로 사회에 부적응해 거의 노출이 안된 경우가 많아 도움이 시급한 청소년들이다.

‘해처럼 밝은 길로 가라’는 의미의 일시보호소 ‘해길’은 가출, 폭력, 성매매 등 위험에 노출돼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이 일시적으로나마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쉼터같은 곳이다.

현재 남동구 간석동 청소년상담센터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녀 각각 4명씩 8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일주일까지 머물 수 있다. 2006년 한해 긴급구조 및 일시보호사업으로 보호된 청소년은 105명. 이중 48%는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39%는 쉼터 및 관련기관에 입소했다.

이와 같이 지역사회 청소년을 위한 지원은 상담에서부터 일시보호, 의료 및 건강지원, 기관연계까지 유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지역 내 모든 청소년을 대상, 전문적이고 특화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해 청소년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최보경기자 bo41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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