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 한일 월드컵 16강의 기쁨을 재현한 또 한 명의 숨은 일꾼을 만났다.
인천시청 체육진흥과에 근무하는 이순구(35. 6급)씨.

이씨는 한국과 토고와의 경기가 열린 지난 13일 5만여 관중이 운집한 문학경기장 전광판 응원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성공적으로 만든 주인공이다. 월드컵이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문학경기장은 2002 월드컵 때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을 확정지은 축구 성지다. 당시 그 감동과 환희를 반드시 재현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너무도 간절했다.”

그러나 월드컵 방송 중계권을 가진 한국방송협회 마케팅 대행사의 부가방송권료 요구로 사실상 문학경기장 전광판 중계가 무산될 뻔 했다며 이씨는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문학경기장 전광판으로 한국전 조별 예선 세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서 최소 1억원의 부가방송권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리 예산을 확보해 놓지 않은 시로서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욱이 월드컵을 앞두고 치러진 지방선거로 기업의 후원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다행히 전광판 중계는 FIFA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와 협의, 부가방송권료를 내지 않는 대신 경기 시작 전후와 하프 타임 때 현대차 광고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밤 10시부터 시작되는 경기시간이었다.

“평일 퇴근시간 이후부터 시민들이 몰릴 것을 감안하면 경기시작 전 3시간여 동안 경기장 내 시민들의 관심을 모을 이벤트가 절실했다.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려할 때 최소 5만 여명이 넘는 관중일 몰릴 텐데 아무런 이벤트 없이 경기장만 개방할 경우 질서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씨는 지역내 중·고교와 대학교 및 단체들을 상대로 볼거리를 제공할 공연팀과 응원 동아리를 섭외했다. 그리고 이틀밤을 꼬박 세워 행사 시나리오를 준비한 이씨는 대규모 월드컵 응원을 상업적인 이벤트 하나 없는 순수 시민들만이 참가한 ‘축제의 장’으로 연출했다.

특히 경기 당일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시민 1만여 명이 보여준 꼭짓점 댄스와 문학벌 밤하늘을 수놓은 5만여 개의 형형색색 종이비행기는 그야말로 일대 장관을 이뤘다.

“마치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리허설을 한 것도 아닌데 그날 경기장을 가득 메운 5만 여명의 인천시민은 모두가 하나돼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따라주었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최고 보람된 밤을 보낸 이씨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인천시민이 아름다웠다”고 거듭 말했다. 지건태기자 jus216@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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