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제의 앞날과 관련해 지난 15일 뜻 있는 움직임이 있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소속 두 의원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각기 제출한 것이다. 두 의원의 개정안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 폐지와 함께 현재 중선거구를 택하고 있는 기초의원 선거구제를 소선거구제로 전환하고 기초의원 비례대표제를 없애는 내용을 공통으로 담고 있다.

기초의회 출범 이후 사상 처음 정당공천제가 시행된 5.31지방선거 과정에서 공천헌금 수수 등 폐해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정당공천제가 백해무익하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정부와 집권여당의 실정을 심판한 국민의 의사는 존중해야 하겠지만 지역사회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를 중앙정치의 정파적 이해로 변질시켜 지방자치제도를 역행시켰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5.31지방선거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온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통과된 공직선거법 제 47조 개정 때문이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정당공천을 기초의원까지 확대 적용하면서 공천비리가 속출하고 정당정치가 강화돼 지방자치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지난 95년 첫 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야당이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노려 관철시켰다. 5.31지방선거에선 기초의원까지 공천하도록 한나라당이 밀어붙였다. 당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기초의원을 선거구별로 2~4명을 뽑게 되면 지방색이 견고한 영남과 호남에서 서로 기초의회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으나 선거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특정 정당의 독식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떤 제도라도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정당공천제의 가장 큰 문제는 후보자의 능력이나 자질에 관계없이 ‘묻지마투표’가 이뤄져 지방선거가 중앙 정당의 대리전으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결국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예속시킴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고 중앙정치의 역기능을 지방으로 확산시킨다.

기초단체장 출신 인사들은 대부분 정당공천제는 유권자보다는 국회의원에 잘 보여야 하고 지배적 정당구도 형성으로 정당에 예속되는 결과를 만든다며 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선관위가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여부에 대해 각 정당의 당론을 질의했을 때 열린우리당은 찬성의사를, 한나라당은 유보적 입장을 보였었다. 정당공천제는 아직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지방자치제를 더욱 중앙정치에 예속시켜 지방자치 발전을 저해한다. 정당공천제 폐지 여부는 각 정당들이 이해득실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지방자치 구현이라는 먼 안목에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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