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주변의 논밭이 몽땅 사라졌다. 처음 이곳으로 올 때만 하여도 너른 들판과 청량산이 한눈에 들어와 풍광이 그런 대로 흡족했었다. 논밭에 더러는 웅덩이도 있어 올챙이를 잡아오거나 잠자리를 잡느라 아이들이 법석을 떨기도 했다.

우리 집 베란다 한쪽 구석에 서 있는 잠자리채는 그런 아이들의 함성을 여태 간직하고 있다. 그후 택지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주변 농촌을 해체시키려는 계획이 시작되었다. 선대 이후로 땅을 지키던 사람들까지 내몰리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빨간 모자를 쓴 철거반원들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게 되었다. 이제는 자투리땅으로 남아있던 조그마한 텃밭마저 건물이 들어서려 한다.

요즘 시골에도 마찬가지라 한다. 돈 많은 사람들이 일구지도 못할 땅을 사놓고 있다 한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그냥 놀리는 땅만 보아도 속이 타들어 간다는데. 모든 게 돈으로만 해결이 되는 것 같아 문득 고향 옆 집 아저씨의 얼굴이 떠오른다.

시골집은 대로 옆의 텃밭을 지나 쪽 길로 들어서야 다닐 수 있었다. 우리 가족만 다니면 텃밭도 엉망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옆 동네 아이들이 그 길로 학교를 다니게 된 이후로는 텃밭이 아예 길이 되고 말았다. 텃밭의 소유가 옆집과 우리 집의 것으로 되어 있으니 우리야 집을 드나드는 길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옆집은 그냥 손해를 보는 셈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줄을 쳐 놓기도 하고, 낡은 스레트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집 아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몇 평의 땅을 기꺼이 내 놓으며 길을 크게 내자고 했다. 그리곤 지금까지 그 어떤 공치사나 생색 한 번 내지 않으셨다.

길가 옆 좋은 땅이라고 땅을 내어주지 않았더라면, 건물이라도 지어 남에게 후딱 팔아 넘겼더라면 우리 집은 아마도 볼 품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분의 배려는 돈으로도 환산할 수가 없었다.

대충 눈짐작으로 땅을 나누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도시에선 조그마한 풀밭이라도 남아있길 기대하는 건 오산이리라. 그러니 옆 집 아저씨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기대하는 것은 쓸 데 없는 바람인지도 모른다. 이젠 혹여 꿈이나 꾸어야 할까.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어머니가 귀띔을 해주신다. “사람이 양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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