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지역화폐 ‘시루’의 실적 소식을 알린 시흥시의 16일 보도자료. 자신들의 모바일 화폐 시스템을 '전국 최초'라고 홍보하고 있다. (빨간색 표시)

 

지역 매체 기자들의 메일함에는 하루에도 수십 통의 기관 보도자료 메일이 쌓인다. 그리고 그 보도자료들은 대개 두 가지의 경로를 거친다. 그냥 휴지통으로 바로 가는 게 하나, 그리고 괜찮은 내용이라는 판단으로 다뤄져 기사로 올라가는 게 다른 하나다. 얼마나 고치고 수정해서 내보내는지는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 휴지통으로 가지 않는다면 분명 데스크에서는 다루게 돼 있다.

기자 역시 하루에도 수많은 보도자료를 다루는데, 늘 고치는 공식은 하나 있다. 바로 ‘최초’라는 타이틀은 웬만하면 뺀다는 거다. 이유는 두 가지다. ‘최초’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기관도 없거니와, 실제로 해당 보도자료를 낸 부서에 전화해서 “정말 최초 맞느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 때문에 아예 그냥 빼는 게 옳겠다는 판단에서다.

기자는 16일자 시흥시의 보도자료를 받고 웃음이 픽 나왔다. 시흥시의 지역화폐 ‘시루’가 누적 발행액이 3천억 원을 돌파했더는 실적에 대한 소식이었는데, 이 보도자료의 세 번째 문단에는 “특히 시흥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한 모바일 지역화폐 ‘모바일시루’의 이용 증가율이 두드러진다”는 부분이 있었다.

역시나, 또 전국 최초란다. 흥미로운 마음에 이번엔 시흥시에 직접 문의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흥보다는 인천 등이 더 이르지 않았냐는 판단 때문이다. 시흥시 관계자는 “인천e음은 카드 형태인데, 모바일시루는 모바일 형태로 모바일 상에서 충전 결제가 다 된다”, “조폐공사와 제휴도 했다”는 설명이었다. 

통상적으로 ‘모바일화폐’라고 하면, 스마트폰을 통해 결제가 되는 시스템 전반을 이야기한다. 즉 일반 카드사가 모바일로 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 배포한다면 그 역시 모바일화폐로 부를 수 있다. 지역화폐 차원으로 환치한다고 해도 결국 한국 원화를 그 시스템에 넣어야 하는 만큼, 기본 틀에서 사실상의 차이는 없고, 또 지역화폐로 한정한다고 쳐도 일찍부터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게끔 구축한 경우를 꽤 많이 봐왔다. 

아무리 봐도 최초는 아니라는 생각에 기자가 타 언론사에 있을 시절부터의 취재 기록들을 발췌해 봤다. 그리고 발견한 사실은 인천e음이 과거 ‘인처너카드’라는 이름으로 운영될 때부터 모바일 충전 결제가 모두 가능했다는 점이다. 사실 인천e음의 시스템은 이전부터 모바일 결제 시스템을 운영해왔던 ‘코나아이’와 제휴를 맺고 코나카드의 시스템을 그대로 갖고 온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냥 자동적으로 모바일 충전 결제는 이전부터도 모두 가능했었다. 그리고 ‘인처너카드’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공식발행이 됐던 시기는 2018년 6월이었다. 물론, 인천e음이 그 분야에서 ‘최초’인지는 기자도 사실 모르겠다.

재차 검색해 보니, 시흥시 스스로 ‘전국 최초’라고 홍보하는 모바일시루는 2019년 2월이 되어서야 시범운영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그 내용과 보도는 지금도 네이버 등의 포털 검색을 통해 시민들께서 얼마든 확인 가능하다. ‘전국 최초’라는 타이틀은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었던 거고, 기자가 만약 이 보도자료를 그대로 냈다면 언론사로서는 ‘오보’가 되는 셈이었다.

 

인천 서구청의 보도자료 페이지에서 기자가 ‘최초’라는 검색어로 검색하자 발견된 보도자료 리스트.

 

지역화폐 부분만 그럴까? 기자가 느끼기엔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다. 아마 전국에서 보도자료를 내는 지자체들 대부분이 ‘최초’, ‘유일’ 같은 타이틀을 밥먹듯 애용하리라 본다. 실례로 인천 서구청의 보도자료를 한번 찾아보자. 안그래도 최근 서구의 보도자료 중에 ‘최초’라는 타이틀이 너무 많았다는 느낌이 있어 구청 홈페이지 보도자료 게시판에 가서 ‘최초’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해본 것. 역시나, 최근 두 달사이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보도자료는 7건이나 됐고, 불과 보름여가 지난 이달에만 3건의 보도자료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보도자료의 타이틀을 확인하면 알겠지만, 특정 분야의 보도자료만 그런 게 아니다. 그냥 ‘광범위’하게 ‘최초’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는 거다.

이 내용들 중에는 정말 ‘최초’도 있을수도 있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대로 ‘최초’임을 공식 인증해줄 기관은 그 어디에도 없다. 때문에 관련한 내용(혹은 업계)의 전문가들이나, 이를 깊게 취재해왔던 기자 등의 인물들이 의심을 하게 되면 실제 앞서 언급한 사례처럼 아닌 경우도 꽤 나타난다.

공직자로서 성과를 이룬 것에 대한 뿌듯함, 그리고 이 소식을 빨리 그리고 화려하게 알리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특히 지역화폐 정착에 대한 부분은 인천과 경기지역 공직자들 모두가 열심인 것도 안다.) 그리고, 기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공직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분명 알아준다고 믿는다. 그러니, 공신력도 없이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는 그 ‘최초’라는 타이틀을, 이제는 좀 걷어 버리는 건 어떨까. 시민들은 공직자들의 노력으로 삶의 질이 실제로 나아지는 것에 박수를 보내지, 최초로 뭘 한다는 것은 그렇게 관심이 없을 테니 말이다.

아, 독자들께서 다른 칼럼처럼 이 글을 너무 심각하게 읽지는 않길 바란다. 취재 중 발견한 나름의 ‘재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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