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리 맑은 도랑가로 일도 없이 또 나간다. 산딸나무 열매가 익어간다. 젖꼭지 만하던 열매가 여름 해를 먹고서 밤톨만큼 자랐다. 처음에는 풀색이더니 붉은 빛을 띠며 익어가는 것이 크기도 모양도 꼭 딸기를 닮았다.
층층나무과의 키가 큰 관목. 무르익은 봄, 강화 전등사 매표소 앞에서 처음으로 이 꽃을 보았다. 타원형의 하얀 꽃잎 네 장이 선물상자 묶어 놓은 리본처럼 정성스러웠다. 층층으로 무성한 나뭇잎 위에 흰 나비가 무리로 앉아있는 것 같은 모습은 환희였다. 신비롭도록 아름다웠다. 이후 나는 그 꽃을 가슴에 품었다. 맑고 깨끗한 미소년의 내 연인으로. 하여 그를 기억하는 일이 설렘이었다.
그러나 그 꽃의 이름을 알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꽃이나 나무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묻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지기도 했지만 통 그 이름을 알아내지 못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꼬박 두 해 만에 그 이름을 알아내었다. 지난 봄 친구들과 나들이를 갔던 야생화 수목원에서였다. 열매 모양이 산딸기를 닮았다고 해서 산딸나무라는 이름을 지녔다고 한다. 다소 비싼 듯 여겨지던 수목원의 입장료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이 나이 되도록 처음 본 꽃이었는데 그 꽃에 관심을 갖고 이름을 알고부터는 눈에 자주 띄는 것이다. 이웃동네 아파트 담장 너머에도 피었고, 음식점을 찾아가던 길가에서도 마주했다. 그리고 이곳 새로 자리 잡은 내 일터의 마당가에서도 천연스레 반긴다.
김춘수님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고 했는데, 내가 그 꽃의 이름을 알고부터 그도 내게로 와서 사랑이 되었다. 요즘 들어 하찮게 여기던 작은 풀꽃들이 눈에 들고 예쁘니 나도 바야흐로 사랑에 눈을 뜨는 것인가. 꽃뿐이랴. 눈을 크게 뜨고 소리 없이 사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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