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많은 철거가 이루어지지만 마찬가지로 농촌에서도 수백년동안 지켜온 집들이 아파트 개발로 침투당하고 있습니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한옥이 허물어지는 차원을 넘어, 전통적인 농경생활 공동체라는 가치관이 간단하게 무너지는 겁니다. 이는 정신적인 고갈을 가져다주는 행위와 다름아닙니다.”

인천의 중견 화가 박충의는 지난해부터 줄 곧 농촌의 논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개발이 예정된 아파트 앞 논을 바라보면서 그안에서 사람들을 살리는 생명의 노래를 찾으려고 시도한다.

“택지개발 현장 한켠으로 펼쳐진 겨울 논벌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어느날 문득 트랙터가 지난 자국에 고인 물이 얼어 만들어낸 이미지와 마추쳤어요. 그안엔 사람얼굴이 있고, 동물의 이미지가 있더군요. 순간 묘한 울림이 왔습니다. 땅의 울림으로 다가온 거죠.”

작가는 갖가지 물 빛 형상에서 농촌의 우울한 단면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무리 지형이 변한다해도 변치 않을 강인한 생명력과 비장함이 반영된 형상이다.

겨울논에서 발견한 사람의 이미지를 평면작업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이후 1년여동안 생명에 대한 메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 열세점이 탄생한다.

이를 들고 ‘겨울 논’이란 타이틀을 붙여 남구 주안동 혜원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여섯번째 개인전이다. 주제가 되는 사람을 강조하고 질감표현은 흙을 재료로 사용, 땅과 사람을 복합적으로 나타냈다. 쥐불을 논 논에 초현실적으로 사람형상을 넣었는가 하면, 땅을 의인화해 호미를 들고가는 이미지를 집어넣었다.

“비록 붓 한자루의 기교일지라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을 맞으며 논두렁에 올라서서 붓 춤추며 부활을 기다립니다.” 작가노트에서 밝힌 전시의 변이다.
21일까지 이어진다. ☎(032)422-8863
김경수기자 ks@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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