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에 대한 환경단체들의 공사중단 가처분신청이 대법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기각결정이 내려졌다. ‘도룡뇽 소송’으로 불려진 이 사건은 특히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들은 ‘개발론’의 승리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고 있다. 또 “공사지연에 따른 손실액이 2조원”에 달하며, “국책사업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소송을 주도했던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들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매도할 일은 아니다. 그것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환경보존주의자’와 ‘개발지상주의자’의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볼 일도 아니다. 이번 사건은 정부와 환경단체 모두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정부와 기업들에게는 무분별한 개발이나 충분한 사전 준비 없는 대형공사의 진행에 대해 경각심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환경운동단체들에게도 큰 교훈이 되었다. 환경 보호에 대한 개념조차 없이 맹목적인 개발주의가 판을 치던 우리사회에서 환경보존과 생명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워준 것은 환경운동의 공이다. 그래도 이 정도나마 환경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환경운동단체들의 노력과 희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환경운동이 목적과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특히 도룡뇽을 내세운 지율의 목숨을 건 단식은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지율이 우리사회에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 것은 분명하다. 무분별한 개발에 대해 경각심을 울려주었고, 도룡뇽 같은 하찮은 미물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소홀히 했던 것들을 깨우쳐주었다.

그러나 환경운동은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환경운동은 인간과 자연이 어울려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또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 도룡뇽 보다 인간이 더 중하다. 물론 도룡농 조차 살수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수 있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르나, 그건 너무 큰 논리적 비약이다.

런던을 방문한 사람들은 템즈강가에 우뚝 서 있는 ‘런던 아이’라는 거대한 철구조물에 충격을 받게 된다. 높이가 135m에 달하고 캡슐 하나에 28명이나 타는 이 거대한 유람차는 런던의 상징인 빅벤과 국회의사당 맞은편 근방에 떡 자리잡고 있다.

새 밀레니엄을 기념해 2000년에 세워진 이 ‘런던 아이’는 건설당시 많은 반대에 직면했으나, 지금은 수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탈 수 있는 런던의 명물이 되었다. 일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런던에서 꼭 가봐야할 명소 ‘탑 10’을 꼽는데 ‘런던 아이’는 ‘타워브리지’와 ‘성바오로성당’ 보다도 상위에 랭크되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는 막아야 하지만, 자연은 인간과 조화를 이루고 인간이 이용하고 즐길 수 있을 때 더 의미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뉴욕 맨하탄의 장대함과 홍콩의 백만불짜리 야경은 그랜드캐년과 같은 자연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시드니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 있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없다면 시드니는 삭막할 것이다. 꼬르꼬바두언덕을 오르는 케이블카가 없다면, 하느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엿새 가운데 이틀을 소비해 만들었다고 브라질사람들이 자랑하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아름다음을 많은 사람들이 만끽할 수 없을 것이다.

스위스의 산들을 관통하고 있는 그 많은 등산열차들이 없다면 ‘인간승리’를 이뤄낸 극소수의 장애우들과 프로수준의 등산실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프스의 장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문학산 만한 높이의 산들에는 여지없이 등산열차가 놓여 있고 웬만한 언덕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노약자와 장애우들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 그리고 인간이 살아갈 환경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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