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나무로 ‘소리의 생명’을 빚어내는 사람.
현악기 제작가 라호연(51·인천시 남동구 구월3동)씨는 국내에서 몇 안되는 마이스터다.

전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가 사람의 손길을 거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로 변신하는 신비로움. 그 마력에 빠져 유망한 연주가의 길을 접고 악기 제작의 길에 들어섰다.

“KBS관현악단에서 12년간 있었죠. 초등 6학년때 어머니 권유로 처음 바이올린을 만났을 때 푹 빠져들어 연주가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악기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도 그에 못지 않게 컸어요.” 악기제작비법이 궁금해 바이올린을 무조건 뜯어보기까지 했던 청소년기 기억도 있다.

바이올린 연주기량을 닦기 위해 갔던 러시아행은 현악기 제작가의 길로 접어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96년 유명한 현악기 제작가 블라디미르 끼또프의 제자가 된 그는 연필을 깎는 법, 나무의 나이테와 결을 보는 법, 나무가 서있는 방향에 따라 무늬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익히며 장인이 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을 시작했다. 좋은 악기 제작의 토대가 되는 나무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수 천 미터 산꼭대기에 올라 100여년 자란 나무를 살펴보는 일은 예사였다.

꼬박 5년의 세월. 앞판과 뒷판의 두께, 이음새의 처리, 칠 두께 등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인다는 바이올린을 처음 내 손으로 완성해냈을 때 희열과 감동을 그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겁니다. 칠도 매끈하지 않고, 표면도 투박해보이지만, 이 녀석을 들고 얼마나 신나게 연주를 했는지 모릅니다. 누가 달라고 해도 줄 수가 없는 귀중품이죠.” 환한 미소가 감돈다.

지난 2000년 그는 귀국하자 마자 고향인 인천의 종합문예회관 인근에 현악기제작 및 수리점을 차렸다. 외국산 바이올린을 선호하거나 서울의 악기점을 찾던 인천의 중·고교 예비 연주가들이 하나 둘 그를 찾았다. 시향단원 등 전문 연주가들도 그에게 마음놓고 수리를 맡긴다.

“내년에 열리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악기 연주가 아닌 제작분야 콩쿠르지요. 악기 각 부위의 균형감, 소리, 디자인 등을 3차에 걸쳐 면밀히 따지는 권위있는 대회죠. 최고의 바이올린을 출품하고 싶어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은 독일에 유학중인 첼리스트 라경서씨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시립콘서바토리 최연소 입학, 러시아 첼로콩쿠르 상위 입상 등 기록을 더해가며 아버지의 음악성을 잇고 있다.

손미경기자 mimi4169@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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