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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조병창' 건설로 물길 틀어져
‘자연과 이야기하면서 걷고 싶은 하천’이라는 테마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굴포천의 물줄기는 부평묘지공원 안 칠성약수(七星藥水)와 부령약수(富領藥水)에서 발원한다.



부평묘지공원은 북쪽에 주안산(만월산)과 금마산이, 동쪽으로 부개봉 산줄기가 휘감아 돌아 아늑한 큰 골짜기이다. 산세도 그런대로 험해 여러 개의 골짜기로 이뤄져 있다.

이 굴포천 상류의 물줄기를 ‘원통천’(圓通川)으로 부르는 이들도 더러 있다. 곡절이 있는 이름이다. 조선조 중종 때 김안로는 서해에서 한강에 이르는 운하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암반지대인 부평삼거리~간석오거리의 고개를 뚫지 못했다.

운하건설을 눈 앞에 두고 이 고개에서 딱 막힌 김안로는 ‘원통하다’며 가슴을 쳤다. 그래서 지어진 이름이 ‘원통이‘고개다.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원통이 고개를 타고 흐르니 ‘원통천’으로 부른 것이 아주 없는 얘기는 아니다.

원통천의 물줄기는 원래 백운역과 지금 부평3동 사무소 일대에 있던 ‘신촌’을 거쳐 조병창 안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조병창이 들어서면서 물길은 동아아파트 언저리인 부평대로 쪽으로 틀어져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콘크리트로 온통 복개돼 하천이 지나는 자리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부평공원이 들어선 신촌 일대는 본래 초지만 무성한 벌판이었다. 그러나 1940년 부평조병창 확장공사 때 경인철로 변에 ‘하로나까’(弘中)라는 군수업체가 들어서면서 그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업체에 공원으로 입사를 하면 징용을 면제 받는 ‘현지징용’의 혜택을 받았다. 징용을 면제 받기 위해 장정들이 전국에서 모여 들었고, ‘하로나까’ 공장에서 가깝고 땅 값도 싼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새로 생긴 마을이 바로 신촌이다.

이 업체는 2년 뒤 미츠비시(三菱)로 넘어가 이름도 바뀌었다. 하지만 해방과 더불어 미츠비시가 문을 닫았고, 신촌 사람들도 모두 직장을 잃고 이 곳을 떠났다.

원통천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부평조병창은 엄청 큰 군수물품 제조 기지였다. 지금의 부평1동인 동아·대림 등 아파트 자리와 산곡 3,4동의 미군부대, 현대·우성·동남·삼일아파트 지역, 그리고 화랑농장을 포함한 그 일대가 조병창이었다.

일제는 1940년 4월 부평부 부내면을 인천부로 편입시키고 부평 조병창을 확장했다. 확장공사 하청업자 다섯 명 가운데 ‘다다구미’(多田組)라는 사람이 있어, 롯데백화점 앞 원통천 개울가 일대를 ‘다다구미’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다구미 마을(평화촌)은 해방 후 하청업자 다다구미가 철수하자 평평한 빈터만 남았다. 가난했던 사람들은 이 곳에 판잣집을 다닥다닥 붙여 짓고 살기 시작해 부평의 달동네로 불리웠다.

해방 후 조병창 기지에 미군8군 보급창인 ‘에스캄’이 주둔했다. 풍부한 미군 물자의 유통이 활기를 띠면서 이 일대는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음식점과 술집이 들어서고 집창촌도 들어섰다.

“미군 기지가 들어선 뒤 마을 전체가 유흥가로 변하면서 깨끗했던 원통천의 물도 서서히 탁해지기 시작했어. 그 때는 원통천이 복개되지 않았을 때였거든.” 부평구 갈산동에 사는 이종식(58)씨는 미군 보급기지가 들어선 뒤 주변 상권이 번성하면서 원통천의 물이 흐려졌다고 전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미군기지가 차지했던 면적이 줄어들고 대신 오늘과 같이 대형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면서 원통천의 오염은 가속화 됐다는 게 그의 얘기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누구나 선망하는 '시민 자산'으로


홍일표 정무부시장(하천살리기 공동대표)인터뷰


“인천 시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주고, 다른 도시민들에겐 부러움을 살 수 있는 자랑거리로 내놓겠습니다.”

인천시하천살리기추진단 공동대표인 홍일표(51)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구상하고 있는 하천 살리기의 큰 그림이다.

홍 부시장은 어디에 내놔도 부러움을 살 수 있는 공간이 곧 인천의 하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 밑천은 이미 인천의 바닥 곳곳에 충분히 깔려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우선 인천 시민들이 하천에 갖고 있는 사랑입니다.” 요즘 그는 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밖에서 감으로 전해받은 분위기와 실제 안에서 직접 챙기면서 느낀 하천살리기의 붐에 꽤 상기돼 있다.

비록 정무부시장으로 앉은 지 4개월도 안됐지만, 그는 인천서 일렁이고 있는 하천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 지 몸으로 느끼고 있다. 그는 하천에 대한 시민들의 애정이 거의 ‘운동가’수준이라고 에둘러 표현한다.

“문제는 굴포천이나 승기천, 공촌천, 장수천 등 인천의 하천을 깨우기 위해 정한 테마를 어떻게 공유하고, 실제 조성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 건가 하는 겁니다.”

홍 부시장은 조금은 더뎠지만 하천별 조성방향을 테마로 선정한 일에 상당한 의미를 보탠다. 인천의 하천은 작지만 나름대로의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씩 다른 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하천별 테마 속에 녹았다고 그는 보고 있다.

따라서 그는 하천조성도 기술자 몇 명과 포크레인 등 건설장비가 동원돼 후다닥 끝내는 단순한 조성공사가 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하천의 호안이나 둔치 조성용 벽돌에 그 지역 주민들의 이름을 새겨 넣는 등의 이벤트로 인천 시민들의 혼과 참여정신을 불어넣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조성과정에서도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접목돼 ‘나도 하천을 조성하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고 스스로 뿌듯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자꾸 개발해 내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하천 살리기는 인천이 ‘오염 도시’라는 멍에를 벗는 중요한 일입니다.” 그는 임해공업도시로 성장한 인천은 각종 불명예의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고 말한다.

불명예를 극복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작업들이 그 동안 인천시가 추구해 왔던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는 길이라는 게 그의 믿음이다.

하천 살리기사업도 그 중 하나의 과제다. 이를 위해 그는 예산의 뒷받침을 최대한 차질 없도록 신경 쓸 작정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선례도, 그 일을 했던 서울시장이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있기때문도 아니다.

하천을 살려 시민들이 흔쾌히 마음껏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된다면 바로 그것이 시민들을 위한행정이자 정치라는 소신 때문이다.

“목표대로 숨쉬기 찝찝한 공기를 깨끗하게 개선하고, 300만평 공원화사업으로 도시 전체를 쉼터로 만들고 여기에다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을 상상해 보세요.”

그는 살고 싶은 곳에서 사는 맛을 느끼는 도시가 곧 시가 목표로 세우고 있는 세계 일류 도시라고 말한다. 그 한 축이 생명이 살이 숨 쉬는 하천이라는 데는 변함없는 그의 소신이다.

“힘닿는데 까지 열심히 챙기고 정성을 다해 기억하고 싶은 하천으로 시민들의 품안에 돌려놓겠습니다.”

홍일표 정무부시장이 하천살리기 공동대표로서 시민들에게 하는 약속이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참여와 행정이 교감 고유특색 살려 복원


최계운 인천대교수(하천살리기 공동대표)




우리 인천에서는 지난 3년간 하천살리기사업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 동안 정부의 획일적인 하천공사로 인식되던 하천살리기의 모습이 시민들과 인천시가 ‘하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계획하는 형태로 바뀐 것이다. 이른바 시민과 행정이 함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거버넌스’ 형태의 의사결정 방법을 국내 최초로 시작한 것이다.

모든 하천마다 동일한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하천복원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하천마다 하천 고유의 특색을 찾아서 그 특색에 맞게 하천을 조성해 나가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수십 차례의 논의와 토론, 심포지엄등을 거치면서 갈라졌던 의견을 통합하고, 하천의 문화, 생태 및 지형학적 특성 뿐만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친수성도 감안한 계획이완료되었다.

이제 인천 하천에 대하여 행정이나 시민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방관자가 될 수 없다. 그 동안 너무 늦다는 질책을 엄청나게 받으면서도, 서울 청계천보다 시작을 빨리 했지만 아직도 삽을 뜨지 않았다는 질책을 들으면서도, 먼저 공사를 시행하고 나중에 고치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에 시달리면서 시종일관 끈기 있게 ‘현재 상태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안’을 만들기 위해 그것도 하천의 주인인 주민들이 함께 모여서 결정하기에 3년여가 걸렸다.

그러나 결코 시간낭비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그런 형태를 우리 인천에서는 이루어낸 것이다. 굴포천과 공촌천에서는 그 동안 마련된 계획서에 따라 공사가 시작되었고 승기천도 오는 5월이면 첫삽을 뜨게 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들이 합의한 바와 같이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뛰어노는 하천, 도심내 철새가 돌아오고, 창포꼿 넘실거리는 하천’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그 동안 각종 이의를 제기해왔던 주민들도 모두 동참해서 조그만 돌 하나 옮기는데, 나무를 심고 꽃길을 가꾸는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즉시 관계자 또는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에 연락을 해서 문제 소지를 없애고, 상류부에서 떠내려오는 쓰레기를 우리집 대문앞에 널려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심정으로 치우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이제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우수한 사례가 되는 인천 하천의 모습, 2년 후면 인천 하천을 보려고 몰려드는 인파와 인천하천변에서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는 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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