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인천신문 저출산문제연구소장

통일이 되면 국토 면적이 넓어지고 남북한의 인구가 합쳐져 7500만이 되어 세계 21번째 인구 대국이 된다. 국력은 커지고 내수시장은 넓어진다. 그렇다면 출산율은 어떻게 변화할까?

통일 후 독일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 후 출산율에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1990년 통일 전 서독의 출산율은 1.43명, 동독은 1.67명으로 동독의 출산율이 높았다. 통일이 되자 서독 지역의 출산율에는 변화가 없었으나 동독지역은 출산율이 크게 하락한다. 통일 후 1년이 지난 1991년에는 1.01명, 1992년에는 0.89명, 1994년에는 0.83명으로 하락한다. 통일 전에 비하여 4년 만에 절반으로 감소한 것이다.

통일 후 동독 지역의 기업은 경쟁력이 약하여 많은 기업이 도산하였으며, 살아남은 기업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직원을 감원하였다. 이에 따라 1990년 2.9%이던 동독의 실업률은 1991년에는 11.1%까지 상승한다. 

동독지역의 많은 기업이 도산한 것은 경쟁력이 낮은 것도 원인이지만 동독 화폐를 고평가하여 서독 화폐와 통합한 것도 큰 원인이다. 동독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1:4 정도로 화폐를 통합해야 했지만 동독 주민의 임금과 연금을 높게 해주고자 1:1로 통합하였다. 

그 결과 재료비와 임금, 생산 제품의 가격이 일시에 4배 상승하였다. 재료비와 임금 등의 비용은 4배나 증가하였으나 생산된 제품은 품질이 나쁘고 가격이 비싸서 팔리지 않아 기업이 도산하게 된 것이다. 많은 기업의 도산으로 실질적인 실업률은 30~40%까지 상승한다.

이렇게 경제가 나빠지고 실업률이 높아진 상황에서 동독 지역의 여성들은 동독 지역의 남성들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보다 서독 지역으로 이주하여 일자리를 찾거나 남성을 찾는 것이 유리했을 것이다. 실제 1989년 11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동독 인구의 1/4이 서독으로 이주하였고, 1990년 10월 통일 후에는 매주 4,000명이 서독으로 이주하였는데, 특히 25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많이 이주하였다. 이미 결혼한 여성도 서독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일자리를 찾든가 실직한 남편을 대신하여 경제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출산을 보류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동독 지역의 출산율 하락은 서독 지역에서의 기회와 동독 지역의 실업률 상승이 맞물려 발생한 것이다.

통일 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남한 지역은 현재의 낮은 출산율이 유지되거나 좀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통일로 인하여 더욱 안전한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북한 지역의 출산율은 동독 지역보다 더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남한과 왕래가 없으며, 정보도 공유하지 않는다. 경제 격차도 더 크다. 통일 당시 동서독의 1인당 GDP 격차는 2.1배에 불과했지만 2012년 남북한의 격차는 20.8배에 달한다. 동서독의 무역 규모 격차는 13배였으나 남북한의 격차는 146배에 달한다. 동독은 사유재산이 상당히 인정되어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으나 북한은 사유재산이 없다. 따라서 북한 지역에 미련을 둘 이유가 적다. 북한에는 경쟁력 있는 기업도 거의 없다. 

이와 같이 동서독의 격차보다 남북한의 격차가 훨씬 더 크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되면 많은 북한 주민들은 남한으로 이주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1950~90년대 사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였듯이 북한 지역에서도 젊은이, 그 중에서도 고학력의 전문인력과 여성의 이주가 가장 많을 것이다. 이들은 가장 의욕적이고 좋은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들은 남한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고 남한 남성과 결혼하려 할 것이므로 북한 지역의 출산율은 급격하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혼인 상태에 있는 여성까지도 새로운 기회를 찾고자 출산을 기피하여 출산율은 동독의 경우보다도 더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통일 전에 대규모 인구의 이동과 그에 따른 북한 지역의 출산율 하락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둘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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