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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특집 리뷰②] 리오네 사니타의 대부선과 악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믿음은 얼마나 유약한가.
안토니오는 악인인가, 선인인가.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에두아르도 데 필리포의 희곡을 토대로 구성된 이 이야기의 시사점은 명확하다. 선과 악의 구분이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선의 집행자는 당연히 선인일 것’이라고 추측해버리는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유약한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 속에서 선에 대한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은 마피아 조직의 수장 안토니오다. 그는 살인을 저지르고 거짓 증언을 사주해 범죄를 무마시키는 등의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전형적인 악인이다. 따라서 관객으로서 안토니오에게 가장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감정은 악인에 대한 도덕적인 거부감이다.

그러나 안토니오에 대한 설정이 반전을 위한 도구임을 직감하는 순간, 그에 대해 관객이 느꼈던 감정은 순식간에 역전된다. 마을 사람들은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안토니오의 자택을 방문해 시시비비를 가려주기를 청하는데 이유는 그가 갖는 권력의 절대성을 신뢰하는 까닭이다. 안토니오가 가진 권력은 그의 명령에 의해 누구든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잔혹한 폭력성으로부터 기인하므로 사람들은 그의 판결에 맹목적으로 수긍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건 악인의 악한 권위에서 비롯되는 판결이 대체로 공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사실이다.
고전적 서사에서 비춰봤을 때, 안토니오의 역할은 동양으로 치자면 ‘포청천’, 서양으로 치자면 ‘솔로몬’에 해당한다. 영화 속에서 안토니오는 세 가지 사건에 대한 판결을 요청받는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사건은 성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원론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판결이 현실 세계에서는 당위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관객이 안토니오의 판결을 통해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반전 이상의 효력을 갖는다.
자신이 앓아누운 틈에 자신의 일자리를 차지한 동료에게 관통상을 입힌 첫 번째 의뢰인에게는 한 차례 폭력을 가한 후 절대 누군가를 해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는다. 자신은 모르고 일을 시작했다고 항변하는 의뢰인의 동료에게도 절대 누군가의 밥줄을 탐해서는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와도 같았던 이 플롯에서 ‘원수를 용서하라’나 ‘폭력을 미워하라’와 같은 성경의 구절을 떠올리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객에게 300유로를 융자해주고 초과 이율로 840유로의 이익을 보고도 원금 상환을 독촉하는 의뢰인에게는 마치 이창동 감독의 <버닝> 속 해미처럼 마임으로 300유로를 주고서 받았으면 사라지라고 협박한다. 이는 마치 기독교적 텍스트의 시각에서 고리대금업자(사실은 유대인에 대한 원색적 비난이라는 측면도 있지만)를 지탄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현대식 변주처럼 보이기도 한다.
안토니오는 폭력과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이처럼 마을의 보안관, 재판관 역할을 기꺼이 감수한다. 상기해야 할 사실은 이 영화의 원제가 ‘리오네 사니타의 시장’이라는 점이다. 마을 사람들이 안토니오를 시장이라 부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명(命名)에서 우리는 권력의 악한 부분에서 오는 굴종과 판결의 선한 부분에서 오는 존경을 동시에 읽어낼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안토니오가 행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선에 가까운 행동이었다고는 하나 이를 조건으로 영화가 그에게 신분세탁을 허락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안토니오가 갖는 모호함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사진 출처: 다음 영화]


폭력과 살인을 권력의 정당성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안토니오는 여전히 악인이다. ‘선한’, ‘자비로운’은 수식어에 불과해서 ‘악인’이라는 주어를 꾸밀 수는 있지만 대체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안토니오는 ‘선한 악인’이라는 모순적인 개념으로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영화는 역의 상황도 보여준다.
마지막 의뢰인은 아들인 자신과 아들의 임신한 여자친구를 극악한 상황 속에 방치하고 모욕하는 아버지를 살해하고자 하는 아들이다. 의뢰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제빵사다. 근면성실을 주요한 가치로 여겼던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분히 외적인 측면에서 그는 선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탐욕과 부정에 눈이 멀어 아들 내외를 방치하고 유흥에 눈독을 들이는 그는 악인의 면모를 띤다. 그는 안토니오와는 반대의 구조에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선과 악이라고 규정되는 것들의 공존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인물의 상황과 설정은 계속해서 전복된다. 의뢰인의 처지에 자신이 분개하며 의뢰인의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안토니오는 되려 자신이 칼에 맞고 죽음의 위험에 처한다. 해당 씬을 기점으로 안토니오의 악과 의뢰인 아버지의 선이 바통 터치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우화라고 여실히 느껴지는 지점 역시 해당 씬부터다. 이야기가 시작될 때, 예수와 가장 거리가 가장 먼 인물로 보였던 안토니오는 영화가 끝날 때 가장 예수와 가장 가까운 인물이 된다.
가족들과 수족들이 자신이 의뢰인 아버지에게 칼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문 간의 복수혈전이 시작될 것을 우려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고 자연사로 이를 위장하려는 그의 선택은 다분히 우화적이다. 그의 선택에 대해 현실적 대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이 우화의 목적을 파악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안토니오의 선택은 기독교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견지하는 예수의 '자기희생'과도 같다. 연장선상에서 죽음을 앞둔 그가 의뢰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플롯은 <최후의 만찬>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오네 사니타의 악인은 어째서 성인과 같은 모습으로 죽었는가.
이 이야기는 서론에서 밝혔듯 선과 악 사이의 구분이 무의미한 세상 속에서 선과 악에 대해 우리가 품는 기대와 믿음이 얼마나 유약한지 완곡하게 표현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동기에 대한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부재한다. 안토니오가 비도적적인 수단을 감수하면서까지 리오네 사니타를 지키고자 하는 동기는 이 이야기의 폐부를 깊게 찌르지 못한다. 관객이 이 이야기의 끝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악인으로 태어나 성인의 모습으로 죽은 한 인간의 삶인데 그 삶에는 '정수'가 부재한다. 그 모호함 속에서 우리는 안토니오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악인인가, 선인인가. 둘 모두인가. 둘 모두 아닌가. 그러나 목이 꺾여버린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다음은 본지 기자가 GV(게스트와의 만남)에서 배우에게 질의한 내용.

기자: 영화 인상 깊게 잘 봤다. 안토니오는 악마에 가까운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예수에 가까운 인간이기도 하다. 약자의 편에서 판결을 들어준다는 점, 폭력과 유혈사태를 막기 위해 종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자기희생을 기꺼이 선택한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엔딩 씬은 <최후의 만찬>을 떠오르게 한다. <최후의 만찬>에는 총 13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엔딩 씬속 방안에 등장하는 인물은 10명이지만 오지 못한 가족들을 합치면 총 13명이 된다. 한편으로 영화 속에서 계속해서 ‘양’, ‘성모님’이 언급되기도 한다. 따라서 영화가 다분히 기독교와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프란체스코 디 체바(안토니오 役): 마리오 마르토네 감독이 엔딩 씬에 최후의 만찬 이미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 (질의자가) 그러한 부분들을 생각해낸 건 잘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또한, 안토니오가 나폴리에서 가장 어렵고 힘든 지역에서 태어났고 그러한 부분들도 (예수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 자세히 다룬 측면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된 <리오네 사니타의 대부> GV 현장.@송승원기자

송승원 기자  inu-ssw@incheonnewspape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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