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난다

<백 석 시집, ‘백 석 시전집’ >

지금까지 알려진 시작품 94편. 제목만 전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은’까지 넣으면 모두 95편의 시를 남긴 서도(西道) 사내 백 석(白 石). 작품 ‘비’는 모더니스트이면서 이미지스트였던 그가 남긴 대표적인 단시 중의 하나다.

‘청시’ ‘노루’같은 2~4행의 짧고 아름다운 시 가운데에서도 특히 짧고 간결한 이 시는 ‘흰 아카시아 꽃’이 내보이는 식물적 시각 이미지와 코끝에 물큰 풍기는 동물적 ‘개비린내’의 후각 이미지, 이렇게 단 두 개의 선명한 이미지로써 이루어져 있다.

이맘때쯤일 것이다. 초여름 비가 두레방석처럼 무리지어 피어 있는 아카시아 꽃 송아리를 하얗게 적시고 있다. 환하고 곱다. 그러나 비에 젖은 아카시아 꽃향기는 아주 진하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냄새를 풍긴다. 그것은 식물의 냄새가 아닌 동물의 몸 냄새다. 그래서 백 석은 이 밀원(蜜源)에서 물큰물큰 풍겨오는, 머리가 띵하도록 진한 꽃향기를 차라리 육질(肉質)의 냄새, 개비린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토록 싱싱하고 진하고 비릿한 초여름을 몸으로 맞이해본 적이 있는가.
김윤식 시인·인천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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