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진포 바닷물은 아직은 차갑습니다. 바지자락이 젖을까 걱정하면서도 밀려오는 물결과 술래잡기라도 하듯 달려갔다 뒷걸음질하며 잠시 전 다녀왔던 집을 생각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들의 ‘별장’이란 이름을 가진 집입니다. 아름답지만 대통령의 별장이라 하기엔 초라하기까지 하지요. 그 시절 가난했던 우리 모습의 일면이겠지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국민이 원한다면….” 특유의 떨림으로 남기고 권좌를 물러나던 그의 음성이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그런데 그는 왜 피와 분노가 들끓을 때까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을까요?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일화가 더 유명한 이의 집도 있습니다. 1960년 4월, 군중들이 그의 집을 덮쳤을 때 냉장고에서 수박이 나왔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몹시도 노했지요. ‘4월의 수박’은 배고픈 사람들을 또 한 번 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집 냉장고에도 ‘4월의 수박’을 넣어 둘 수 있습니다. 절대로 안 될 일은 무엇일까요?

프란체스카, 박마리아 같은 꼬부랑 이름도 그리 편치 않은 일입니다. 그때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커피 향도, 빵 굽는 냄새에도 익숙하지 못했던 때입니다. 하물며 푸른 눈의 국모(國母)란 얼마나 낯선 일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따라 만 리 이국에 와서 옷을 꿰매 입는 검소한 국모였던 그녀를 생각하면, 일 점 혈육도 남기지 못하고 간 것이 짠하고 아픕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건망증이 심각한 상황이라고도 하지요. 뜨겁게 닳아 올랐다 금방 잊는다고 냄비라고 비하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기억하여, 잘못한 것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면 산다는 것이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일까요. 지나간 일이란 용서할 수 없는 일도 용서받는 그런 것이 아닌지……. 오늘은 간 곳 없는 인걸을 아쉬워하며 마음이 젖고 싶습니다.

잠시 생각에 젖어 뒷걸음이 늦어졌나 봅니다. 밀려오던 바닷물이 정강이까지 걷어 올린 바지를 적시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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