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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민사회운동(7)-'부평시민모임'~'강화도시민연대'
95년 6·27 지방선거로 본궤도에 오른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심화 단계이자, 생활 정치로서 지역 시민운동의 대상이었다. 지방자치가 시민들의 참여속에,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풀어나가는 것이라면, 개인 보다 단체에 의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참여와 감시가 효과적이었다. 지역 시민운동은 지방자치와 더불어 참여의 기회를 다양화하고 활성화할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 인천에는 구·군단위 자치구역을 거점으로 하는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고 소멸하기도 했고, 기존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지역현안에 적극 대응하며 여성, 교육, 환경, 문화, 자치행정 등 자신의 영역에 전문성을 확보해갔다. 몇몇 단체들은 시, 구의회 현장에서 의정모니터링을 시작했다.

95년 이전까지 인천지역에서 창립된 시민단체의 절반 가량은 전국 조직의 인천지부 형태였으나 이후 창립되는 시민단체 대다수는 인천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아파트 생활문화, 의료 협동조합, 소비자 운동 등 시민운동의 성격과 범위도 거주민 중심의 일상 생활과 직결해 좁혀가기도 했으며, 서울의 그림자에 가려 척박한 인천문화에 대한 반성으로 시민 문화운동도 활발했다.

또 한편으로 이 시기 통일과 민족의 과제들을 실현하고 노동의 문제 등 민주주의를 향한 근본적 문제를 고민하는 단체의 창립도 잇달았다. 이들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갈라진 남북의 문제, 국가보안법의 문제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민주·민족’의 문제를 상기시켰다.

95~99년에 설립된 시민사회단체를 약술(略述)한다.

● 부평·남동시민모임, 강화도시민연대

부평시민모임은 94년 9월 터진 대형 세무비리 사건으로 구성한 ‘북구청 세무비리 규탄 시민대책위원회’를 모체로 95년 2월 창립됐다. 대형 비리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무관심 속에 재발하는 풍토를 주민의 감시속에 고쳐나가자는 것이었다.



6·27을 앞두고 부평·계양구청장 후보 초청 토론회를 벌이고, 지방자치 및 의정감시 강화와 주민자치 활성화를 표방했다. 부평지역의 극심한 공해, 혼잡한 교통, 열악한 복지, 교육 문화환경 등 지역의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점을 찾아았다. 부평미군부대 공원화추진 시민협의회를 주도했고,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철폐운동을 벌이기도했다.

남동시민모임은 96년 3월 창립됐다. 95년 3월 만수동 주민 10여명으로 시작한 모임은 6·27을 앞두고 남동시민모임 준비위 이름으로 남동구청장 후보자 초청토론회를 열 수 있었다.

풀뿌리 지방자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참여의 길을 넓혀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고자 했다. 구의회 방청단을 모집, 96년 11월부터 방청사업 시작했다.

연수시민모임도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96년 3월 결성됐다. 연수구에 살거나 일터가 있는 50여명의 회원들로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제도 운영실태 조사, 연구, 지역사회발전을 위한 교육, 봉사활동, 문화예술활동, 생활환경활동 등을 주요 사업으로 잡았다.

연수구 공익시설 점검, 송도신도시 건설과 환경문제 등을 내용으로 ‘열린광장’을 열어 주민여론을 듣고, 수인선지상화 반대, 송도앞바다 위험시설 단지화감시 운동을 벌였다.

96년 12월 영흥도와 강화 석모도에 국내 최대인 1,200만㎾ 규모의 LNG복합화력발전소 건립 계획이 밝혀졌을 때, 갯벌지역 주민을 비롯해, 강화발전연구회 등 지역 단체, 종교인들은 연대하여 ‘석모도LNG복합화력발전소건설백지화를위한시민모임’을 결성하고 반대운동에 나섰다.

이듬해 4월 한전은 건설계획 유보를 발표한다. 강화도시민연대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97년 5월 발족했다. 이후 강화도의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방향을 주제로 지속적인 토론회를 열었으며, 장화리 대하양식장 건립 등 갯벌 개발계획과 도로, 골프장, 스키장 등 생태를 위협하는 개발 저지에 힘을 모았다.

● 평화와 참여로가는 시민문화센터

96년 6월,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의 청년층이 중심이 돼 ‘평화와 참여로 가는 시민문화센터’ 를 창립했다. 시민문화센터는 창립과 함께 지방자치시대의 개막을 맞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주민의 힘으로 ‘정치 사회적 장치’들을 건설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지방자치와 지역문화의 독자성 실현에 운동의 목표를 두었다. 또 시민문화운동의 역량을 모아 자주통일운동의 관문으로 역할할 것을 선언했다.

인천연대는 회원 조직력을 바탕으로 구 단위 지부 체제를 갖춰 지부별 풀뿌리 공동체를 일궜다. 98년 6월 시민문화센터에서 인천연대로 개칭하고 각 지부 대표 4인과 3개 부설기관 대표 등이 참여하는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했다가, 2000년 6월 상임대표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했다.

● 평화의료생협

96년 11월, 인천시 부평구 부개1동 평화의원에 ‘인천평화의료생활협동조합’이 창립됐다. 지역주민의 출자금으로 의사와 함께 병원의 주인이 돼, 병원경영에서 주민의 건강문제, 마을 보건 프로그램 까지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평화의원은 89년 4월 기독교청년의료인회 소속 39명의 의사들이 소외와 차별없는 의료봉사를 위해 공동출자해 설립한 병원이었다.
평화의료생협은 출자금 3만원 이상씩 낸 부개동, 일신동 마을 주민 168명으로 창립했다.

조합원들을 의사의 일방적 진료가 아닌, 환자와 의사가 예방 및 치료에서 재활까지 함께 참여하는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고 건강관리 프로그램 등 복지와 의료를 결합한 다양한 공동체사업을 실험하며 저변을 넓혔다. 현재 조합원은 1천5백명이다.

● 녹소연/인천사랑여성모임/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

지구촌 경제시대 환경위기의 극복을 목표로 96년 10월 서울에서 녹색소비자연대가 창립됐다. 세계경제질서가 야기하고 있는 환경, 소비자 이슈들에 대해 국제적인 환경·소비자·시민단체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전지구적 시민운동단체로 역할할 것을 자임했다.

인천녹소연은 99년 4월 창립됐다. 창립과 함께 소비자고발센터를 열고 이듬해 시행된 의약분업과 소비자 주권의 문제에 파고들었다. 의약분업의 내용, 의약남용의 문제점과 의약분업시 병원 및 약국 이용방법에서부터 의료계 집단폐업 철회 캠페인, 일방적인 의료비 인상철회를 위한 서명운동 까지 전개했다.

동네상점 활성화를 위한 녹색살림 만들기, 장바구니·재생종이 사용 운동, 재활용품 사용하기, 에너지소비 절약 등을 일상 사업으로 했다.

인천사랑여성모임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각계 여성 전문직업인들을 중심으로 96년 5월 창립됐다. ‘인천 사랑’의 시각에서 지역사회 전반과 특히 시정의 문제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시민의 권리와 삶의 향상을 위해 활동하되, 대안을 제시함을 목적으로 했다.

환경마크 상품전시회, 쓰레기 처리실태조사,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운동 등 주민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99년에는 ‘걷고싶은 거리 만들기’ 운동을 인천시와 함께 추진, 연수구 용담공원 옆길 등 4개 지역에 조성했다.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뤄진 연수지역 80여개 아파트단지의 주민 1천여명으로 96년 6월 아파트생활문화연구소가 창립됐다. 급격히 증가한 아파트 숲에서 공동체 생활문화를 찾고 아파트 하자보수, 관리 등을 공동해결해 나가도록 하자는 데 목적을 둔 첫 시민단체였다.

아파트 관리를 합리적이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개선하고 기존 위탁관리제의 모순을 해결하는데 주안점을 두었고 재활용품 물물교환 장터와 주민체육대회를 통해 공동체 생활문화를 개척했다. 입주자대표, 아파트관리소장, 부녀회장등 아파트 입주민과 함께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결합해 회원을 구성했다.

● 통일민주협의회/종교인협의회

통일민주협의회는 이승만정권 때부터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위해 투쟁해온 원로 인사들이 중심이 돼 95년 1월 창립됐다. 민족이 주체가 되고 민주주의적 협의를 바탕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목표를 두었다. 6·27을 앞두고 통합선거법 설명회를 통해 지방자치가 갖는 의의를 확인하는 것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2004년 인천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4돌기념 우리민족대회’를 앞두고 ‘통일아침대화’를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매월 정례포럼을 개최하고 있다. 96년 12월, 4개 종교단체 전국협의회 인천지역 조직으로 ‘민족화해 통일을 위한 인천지역종교인협의회’(인종협) 창립대회가 답동 가톨릭회관에서 열렸다.

4개 종교단체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정토구현승가회,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으로 전국조직은 93년 7월 창립됐다.

인종협은 96년 7월 오용호 신부, 김선일 스님, 김성복 목사, 김원종 교무 등 4인 공동대표로 출범했다. 그동안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해온 종교인들이 새로운 활동 방향을 모색한 결과 분단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역할에 중심을 두기로 한 것이다. 민족과 화해와 통일사업, 종교간 일치를 위한 대화, 인천지역 제반 현안대처 및 시민권 옹호 등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삼았다.

● 황금가지/문화정책연구소/문화를 열어가는 시민모임

터진개는 신포동의 옛지명이다.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는 96년 6월 개항장이었던 신포동에 터를 잡고 중구 자유공원 일대를 중심으로 옛 문화의 뿌리를 찾아나섰다. 98년부터 매해 ‘인천 장정(長征)’(역사기행)을 해오고있다.



장정의 테마도 정해 ‘개항장 근대건축 기행’, ‘인천의 인물’, ‘인천의 해안선’ 등을 기획했다. 지신밟기, 거북이마라톤 등을 통해 투박한 인천의 옛 문화마당을 찾아나섰다.

‘인천문화를 열어가는 시민모임’은 98년 12월 창립돼 시당국을 상대로 문화예산 감시 운동을 벌이는 한편 시 문화재단 설립운동을 벌여나갔다. 중구 전동 옛 인천여고 자리를 주차장이 아닌, 문화회관으로 활용토록하는 등 문화운동을 벌였다.

인천문화정책연구소는 99년 4월 인천 문화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와 정책개발을 통해 시민 스스로가 문화를 가꾸어나갈 수 있는데 목적을 두고 창립됐다. 인천생명축제를 개최하고 인천문화실태 조사보고서를 발간하는 한편 인천근대문화예술사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벌였다.

● 인천연합 6기 출범과 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 가톨릭청년연대
조국의 자주화와 평화통일, 사회 민주화, 노동자의 권리 향상을 위한 상담 및 노조 활동 지원을 위한 진보적 노동·통일단체로 민족사랑청년노동자회가 95년 5월 설립됐다.

노동과 통일을 주제로 한 강좌를 정례적으로 열었고, 노동법 교실을 운영했다. 5월 광주순례, 8월 통일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고 매향리 폭격장 폐쇄를 위한 사업 등 타지역 통일단체와 연대 활동을 폈다.

96년 7월 천주교인천교구 청년연합회, 가톨릭대학생연합회 등이 함께 가톨릭청년연대를 창립하고 대중사업으로 청년통일교실, 청년문학강좌를 열었다. 노동 및 노조설립 상담과 교육, 노동자 통일 행사를 벌어오던 ‘인천 노동자의집’도 95년 인천연합에 가입했다.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과 사회민주화를 과제로 한 인천연합은 소속단체의 분화와 지도부 교체를 거쳐 97년 6월 새롭게 제6기 발대식을 가졌을 때, 이들 세 단체와 전교조 인천지부, 인천부천대학총학생회연합, 통일을여는 민주노동자회, 인천여성노동자회, 인천기독노동자연맹, 현장문예단 좋은세상 등 9개 단체로 출범했다.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송정로기자  goodsong@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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