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 그 모습만으로도 낯설었던 이름. 그들을 삶을 좀 더 깊이 살펴보기는커녕, 정상적인 우리와는 다르니 어쩔 수 없는 삶이 아니냐고 열여섯 소녀는 간과했다. 삶의 행복과 불행은 자신의 노력여하라고 단정 지었다. 사회구조의 모순을 이해하지 못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종이의 양면을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학교 3학년 딸아이가 묻는다. 소설 속 주인공 ‘영희는 어디에 살았냐.’는 것이다. 놀랍게도 시험문제 중 하나란다. 내용이 어렵다고 구시렁대는 딸아이가 이해가 간다. 그즈음 나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꼭 딸아이 나이에 읽었던 1976년 <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연작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중편소설이다. 다시금 낡은 책장을 넘기며 현실과 다름없음에 마음은 더없이 우울해진다.

어린가슴을 울렸던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낙원도 아니고 행복도 없는 난쟁이 일가가 무허가로 살았던 주소지다. 저자가 미래를 읽기나 한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그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을 성싶다. 부동산 거품을 뺀다고 호언장담하던 대책은 거짓부렁이 아닌가.

재건축 · 재개발 현장에선 날마다 불온한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시행사측과 폭설, 폭언, 몸싸움도 불사한다. 그러다 거구의 중장비가 동원되어 그들의 보금자리는 일순간에 해체된다. 그나마 손 한번 써보지 못한 빈민층은 신음소리만 낼뿐이다.

난장이 가족이 바라던 소원이 무엇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권력인가. 그 무엇도 아니다. 그들에겐 지옥 같은 세상이지만 안식처인 행복동에서 가족이 함께 모여 사는 것, 그것뿐이다. 그들을 몰아낸 행복동의 개발은 무슨 소용이랴. 소설 속처럼 투기를 일삼는 자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으니 말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 한권의 책에서 우리는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본다. 도시 빈민의 궁핍과 자본주의 사회구조 모순의 적나라함을 읽을 수 있다. 화려한 도시 재개발 뒤에 숨은 소시민의 아픔은 느낄 수 있다. 진저리나는 생활고에 마침표가 필요하다. 저자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과연 영희의 품으로 돌아올 순 있는지 궁금하다.

빈민층에서 바라본 사회는 충격적이었다.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문제는 현실도 소설처럼 비극적인 사건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겨울 독거노인이 동사한거며, 가계파산으로 갈 곳 잃은 일가족이 강물에 투신한 일, 자식을 유학 보내고 남편은 고혈압으로 사망하고 반신불수인 부인이 아사한 사건. 아, 기막히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이 모두가 나만 알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때문이다.

굴뚝에서 투신자살한 난장이 아버지를 발견한다. 영희의 처절한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과연 누가 악당이며 천사란 말인가, 낙원구 행복동에 머무는 자에게 묻는다. 지금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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