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仁川)에는 내(川)가 없다.’ ‘인주(仁州)’가 ‘인천’으로 바뀐 지명의 유래를 떠나 인천에는 변변한 하천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저 토막의 짧은 길이에, 자로 잘라 낸듯 곧은 배수구의 모양을 하고있다. 여기에 발목도 채 잠기지 않는 얕은 물은 영락없는 하수다. 하천과 맺은 추억이 있을 리도, 아름다울 수도 없다.

이런 인천의 하천이 변신를 꾀하고 있다. 청계천과 양재천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하천의 새로운 장을 열었듯 인천도하천살리기운동을 벌여 시민들 앞에 반듯한 하천을 내놓는 일을 진행 중이다.

사람들이 멀리했던 하천이 이젠 시민들을 불러모으는 공간으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멱을 감고, 물고기를 모느라 ‘첨벙’소리가 들리는 ‘추억속의 내(川)’로 거듭나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인천신문은 청학환경운동인천본부와 공동으로 ‘인천하천살리기’ 연중 기획보도 한다. 지면을 하천살리기 전국 최초의 민·관 협력사업에 참여하는 인천시,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하천별 네트워크 등의 하천별로 추진상황 등을 점검한다.

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 하천살리기의 성공적인 추진의 기틀을 마련할 계획이다.

인천의 하천은 그 발달이 미약하고, 물길도 여간 짧은 것이 아니다. 이는 산다운 산이 없는 인천의 지형적 특징과 궤를 같이 한다.
인천 하천의 흐름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북쪽으로 흘러 한강과 합쳐지는 하천과 물줄기를 서쪽으로 두고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 남쪽으로 빠져 역시 서쪽 갯벌에 닿는 하천 등이다.

첫째 유형의 하천이 부평을 가로지르는 굴포천(掘浦川)이다. 길이
14km의 굴포천은 대부분 아파트 단지로 채워진 옛부평평야를 꿰뚫고 지나간다. 이어 계양구와 김포시를 거쳐 북쪽으로 흐르다가 김포대교 서쪽 500m지점에서 한강과 합류한다.




둘째의 유향(流向)은 서구의 공촌천(公村川) 8.8km가 대표격이다. 계양산에서 발원해 인공 배수로를 통해 지금의 청라경제자유구역인 동아매립지 한복판을 지나 서해로 빠진다.

공촌천에서 얼마 안 떨어진 심곡천(深谷川)도 같은 유형의 물흐름을 보인다.

마지막 남류(南流)하천의 대표는 길이 5.4km에 이르는 남동구 장수천(長壽川)과 연수구의 승기천(承基川) 6.2km이다. 발원지가 거마산인 장수천은 철마산에서 발원한 만수천(萬壽川)과 만나 수도권해양생태공원을 비스듬히 타고 소래포구로 이어지는 갯골로 빨려 든다.

승기천 물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을 뚫고 하수종말처리장 곁을 지나 지금의 송도국제도시가 조성중인 갯벌로 빠진다. 인천의 중심 하천의 또 다른 특징은 본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난 인공하천이라는 점이다. 매립으로 인해 물길이 바뀌었고, 직강하 공사로 구부러져 있던 뱀 모양이 잣대를 댄 듯 반듯한 직선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굴포천만 해도 그렇다. 당초 자유 곡류천이었으나 곧게 판 개울, ‘직포(直浦)’가 된 것이다. 이는 김포시 전호리에 저수지로 활용됐던 우각호(牛角湖)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팽개다리(掘浦橋)에서 한다리(大橋)를 거쳐 목숙교까지 이리저리 구부러진 개울을 곧게 파서 ‘직포’라는 이름을 생긴 것으로 미뤄 굴포천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개연성을 갖기에 충분하다. 승기천은 유로(流路)가 완전히 달라져 본래의 자연 상태를 찾아 볼 수 없는 경우다.

문학산 북쪽 인근의 얕은 야산인 승기산(해발 122m)에서 발원한 승기천은 원래 연수구 선학동과 남동구 남촌동을 타고 논현동에서 바다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남동공단 조성과정에서 갯골을 매립하면서 연수구와 남동공단을 반듯하게 가르는 인공하천으로 변했다. 배수지역도 당초 남동구 논현동에서 연수구 동춘동으로 크게 달라졌다.

공촌천도 마찬가지다. 원래 경서동 갯골로 흘러 들어갔던 공촌천의 유향(流向)은 동아매립지 조성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동아건설이 중동경기 침체로 놀고 있던 해외 건설장비를 들여와 1980년부터 서구 원창·경서·연희동 등지의 공유수면 1천126만6천 평을 매립하기 시작했다. 11년에 걸친 이 농지확보용 매립으로 공촌천은 지금의 청라경제자유구역 밑 끝에까지 늘어난 것이다.

원래의 상태는 아니지만 인천의 하천은 시민들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폭도 길이도 크지만 이들 하천은 시민들 곁에 가까이에 있다. 개발이 이뤄졌거나 개발이 예정된 도심지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다.

일부러 찾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숙해질 수 있는 지리적인 이점을 품고 있는 것이 바로 인천의 하천인 것이다. 지금 민과 관이 파트너십을 발휘해 ‘하천살리기’를 하나의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들이 인천서 한창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늦은 감마저 없지 않다.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을 지라도, 인천 시민들 곁엔 ‘장수’와 ‘굴포’, ‘승기’, ‘공촌’이라는 이름의 하천이 이미 우리곁에 존재하고 있다. 좋든 싫든 부둥켜 끌어안고 보듬으면서 함께 살아가야 할 가치들이다. 살아있는 하천 속에는 생활의 윤택함과 풍요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오염 차단·유지용수 확보가 화두


민관 '하천살리기 추진단' 가동···조례 제정 등 성과

인천의 하천살리기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전인 2002년 2월, 그리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주는 한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하수처리율이 100%에 이르는 오는 2006년 이후에도 인천지역 주요 하천의 수질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는 예측이 나온 것이었다. 게다가 빗물의 침투를 어렵게 하는 도로포장 등으로 오는 2011년까지 인천의 대부분 하천이 자정능력을 잃어 ‘수서생물이 생존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는 전망을 담고 있었다.

하천살리기 추진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 마당에 이 같은 연구논문은 한 마디로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인천의 하천은 시민들 사이에서 이미 죽은 하천이라고 나도는 마당에 찬물을 끼 얹은 격이었다.

인천지역환경기술개발센터가 발표한 ‘인천지역 주요 하천에 대한 장래 수질환경 환경용량평가’에서 밝혀진 이 같은 관측은 하천살리기를 좀 더 짜임새 있고 한발 더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무조건 하천의 퇴적물을 걷어내고 둔치 주변을 꽃단장하는 좁은 시각의 대책으로는 하천이 그리 쉽게 살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하천살리기는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접근해야할 쉽지않은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연구의 결과는 대략 이러했다. 승기천의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의 유달률(총 오염물질배출량 대비 하천에 실제 유입하는 오염물질의 양)의 경우 오는 2006년 0.079%, 2011년에는 0.081%로 증가한다는 예측이었다. 점점 많은 오염물질이 하천에 흘러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지난 2001년 BOD 유달률이 0.057%(BOD 실측 부하량 하루 1천8백74㎏)로 ℓ당 67.8㎎ℓ인 승기천 하류의 BOD 농도는 2006년 68.4㎎/, 2011년 67.3㎎/ℓ로 악화되거나 보합세를 유지해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관측됐다.

장·만수천의 BOD 유달률도 2006년과 2011년 각각 8.765%과 8.627%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장·만수천 하류의 BOD 유달률은 2.279%로 하루 649㎏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ℓ당 51.8㎎인 BOD 부하 농도는 2006년 241.9㎎, 2011년에는 236.2㎎으로 급격한 악화추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BOD 유달률이 0.02%(하루 2만6천64㎏ BOD부하양 유입)인 굴포천도 2006년 0.084%, 2011년에는 0.075%로 높아진다. 당시 18.6㎎/ℓ인 하류의 BOD농도는 2006년 17.6㎎/, 2011년에는 17.2로 ㎎/ℓ로 다소 나아질 것으로 내다보였다. 하지만 최하위인 5급의 하천 수질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됐다.

공촌천의 BOD 유달율도 2006년 0.814%, 2011년에는 0.811%로 올라가 하류 BOD농도(현재 6㎎/ℓ·3등급)는 2006년 7.8㎎/, 2011년에는 9.3㎎/ℓ으로 4∼5급 수질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이 같이 하천으로 유입되는 오염물질 양의 증가와 이에 따른 하천수질의 악화는 유지용수의 감소와 주변지역 도로포장에 따른 오염물질의 직접적인 유입이 원인인 것으로 풀이됐다. 당시 인천시는 만수와 송도 등 하수처리장의 증설로 하수처리율이 100%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송도신도시·검단·청라매립지 등이 개발될 경우 6천3백50㏊가 포장돼 하루 0.818g/㎡의 BOD부하량이 추가로 증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따라서 인천 하천살리기의 과제 중 하나인 하천의 유지용수의 확보방안과 주변지역의 관리대책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1999년부터 은근히 불이 지펴졌던 인천의 하천살리기운동이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맺었다. 민과 관이 힘을 한데 모아 인천시 하천살리기 추진단을 꾸렸고, 2003년 12월23일에는 전국 최초로 조례를 만드는 등 기억할만한 결과들을 낳았다. 이는 우리의 손으로 ‘물잠자리가 노니는 우리의 하천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박정환기자 hi21@i-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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