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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천년의 숨결 되살린 녹청자 도예가 김갑용 명장녹청자 파편으로 수천 번 시행착오 천 년 전 녹청자 재현

옹기장 부친 가업 이어 도예 입문… 40년 한 길 걸어

김갑용 도예가는 녹청자 명장으로 1976년 옹기장이었던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도예에 입문해 현재까지 도예가로 한 길을 걸어왔다. 12월 3일 연수문화원 내 녹청자 체험교실에서 도예가 김갑용(61) 명장을 만났다. - 편집자 주

김갑용 명장은 전국 도요지에서 모은 녹청자 조각들을 가지고 천 년 전 조상들이 사용하던 녹청자를 만들어냈다. 강우영 기자

“보기에는 부서진 파편 조각이지만 저에게는 스승입니다. 이 파편을 부수고 다지고 구워서 그 옛날 조상들이 사용하던 녹청자를 만들어냈지요.”

인천 서구 경서동 도요지에서 발견된 이 파편들은 천 년 전 조상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현재 김갑용 명장을 있게 한 귀중한 보물이다. 김 명장은 이 파편을 가지고 수천여 번의 시도 끝에 조상들이 사용하던 녹청자를 재현해냈다. 녹청자는 약 천 년 전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등장했던 도자기로 주로 서민들이 생활용기로 사용했다.

옹기과에 가까운 녹청자는 표면의 유약 상태가 고르지 못하고 형태가 울퉁불퉁하지만, 숨 쉬는 기능이 있어 인체에 이로운 친환경 도자기이다. 음식을 담아 놓으면 잘 변질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 있다. 쑥색을 띠는 게 특징이 녹청자는 1230℃~1250℃로 16시간 떼서 구워내야 한다. “백자와 청자가 외형의 아름다움을 갖춰 지배계층이 사용하던 도자기라면 녹청자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춘 서민들의 삶이 묻어있는 생활도자기”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녹청자 조각은 1960년대 인천 서구 경서동 가마터에서 발견됐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4차례 이상 발굴 조사를 통해 녹청자 도요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문화와 역사적으로 그 가치가 높아 1970년 국가사적 제211호로 지정되었다.

경서동 도요지가 발견되기 전까지 일본은 녹청자가 자신들의 독자 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경서동에서 출토한 유물의 연대가 일본의 것보다 앞선 것으로 판명되면서 그 제조기술이 한반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녹청자가 한반도에서 탄생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 뒤로 20여 년이 흐를 때까지 이를 연구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 명장은 1990년대 녹청자가 제대로 재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분야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옛 조상들의 가마터를 찾아다니며 파편을 주워 모았다. 조각의 성분을 분석하고 가루를 내어 굽기를 반복했다. 녹청자에 관헌 문헌이 없어 오로지 파편을 가지고 씨름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 명장은 조상이 남겨 놓은 파편을 따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고, 숱한 시도 끝에 마침내 녹청자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김 명장은 현재 자신의 녹청자가 과거 조상들의 녹청자와 비교해 70~80%가량밖에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완벽하게 재현해내기 위해선 전통가마인 장작가마를 이용해서 소성해야만 가능하므로 이른 시일 내에 전통가마를 만들어 최대한 조상들이 빚은 도자기에 가깝게 만들어내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후학 양성 위해 도예가의 삶 살 터

현재 인천에 있는 도예가는 30여 명 남짓. 인천에도 과거 100여 명의 도예가가 있었지만, 여주나 이천으로 옮겨갔다. 가마를 운영하는 곳도 몇 곳 남지 않았다. 김 명장은 자칫 대가 끊기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김 명장은 이런 이유로 남은 도예가의 삶을 후학 양성에 쏟을 계획이다. 현재 김 명장의 제자들은 많이 있지만 직접 열정과 집념을 갖고 오랜 세월 수련하고 있는 사람은 두 명에 불과하다.  김 명장이 도예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일했다. 그는 전국기능대회에서 금상(도자 부문)을 받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김 명장은 딸에게도 녹청자 제조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그러나 도예가의 삶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과는 동떨어져 있어 이를 배우려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김 명장도 선뜻 누군가에게 전수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 명장은 한 나라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계승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일본이나 중국은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는 않는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녹청자 명장이 만든 작품은 수백만 원을 호가하고 정부가 판로까지 개척해 준다.

김 명장은 앞으로 있을 녹청자 분야 지방무형문화제에 선정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제조방식과 기술은 독보적인 길을 닦아왔지만, 걸림돌이 있다. 녹청자 제조공정 중 전통방식인 장작가마로 구워야 하지만, 도심지에서 장작가마를 설치하기가 마땅한 장소가 없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다. 현재 연수문화원 부근에서 운영하며 가스가마로 녹청자를 굽고 있지만, 이 방식으로는 조상들의 녹청자를 완벽하게 재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는 잘 될 거라며 미소를 지었다. 인천이 문화가 융성한 문화 인천시대가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은 몰라도 문화대국은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천도 항만과 공항, 수도권의 인접성 등 좋은 인프라가 있습니다. 인천도 문화가 강한 도시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김 명장은 인터뷰가 끝난 후 물레 위에 다시 앉았다. 그리곤 그릇 하나를 올려놓고 정형(굽깎기)하기 시작했다. 이 그릇은 초벌구이를 거쳐 유약이 발라진 후 1230℃~1250℃ 고온에서 재벌구이 되면 쑥색의 아름다운 녹청자로 태어날 것이다.


 

강우영 기자  rainzero@incheonnews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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