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꽃, 아버지 / 오정순

집집에서 끌려나온 수다들이 등꽃에 박힌다.
이른 봄부터 받아먹은 소문들이 대롱대롱 매달린다.
발설을 참느라 보랏빛으로 물든다.

이파리 그늘 몇 장 덮고 자던 고양이, 소문이 궁금하다.
귀 쫑긋 세우고 등꽃 밑을 어슬렁거린다.
기회 엿보던 벌들도 그 속에 뭐가 있느냐며 툭, 건드려본다.

잎들이 햇볕을 막느라 긴장하는 동안,
소문의 보따리들이 풀어지고 녹아내린다.
튼튼한 그늘의 줄기 따라가 보니 그 뒤엔,
구멍이 숭숭 뚫린 삭정이가 받쳐주고 있다.

거렁뱅이도 내 집에 찾아오면 손님이란다.
아버지는 기어이 식구들 밥상에 함께 앉혔다.
마룻바닥에 숟가락 던져놓고 뛰쳐나간다.
핑 도는 눈물 너머 마당가에 등꽃이 피어 있었다.

반세기동안 담고 있던 그 일을 등꽃은 기어이 터뜨린다.
얼레리꼴레리, 그 때 그랬지. 네가 그랬지.
등꽃 한 무더기 와락, 꺾어 아버지 찾아가네.
그때의 그 등나무 삭정이 되어 버티고 있네.
그곳에 아버지 계시네.

※오정순 시인은…

 충남 예산 출생.
 2009년 《한울문학》 시부문, 소설부문 등단. 시집으로 '엮어가는 나의 노래', '수신인은 나였네', '그곳에 가면' 등이 있음.  ojs54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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