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신문-한국문인협회 인천지부 공동기획

나목 / 최일화

낙엽이 울긋불긋 저 혼자 낙엽이 된 것은 아니다. 햇빛 없이 바람도 없이 여름내 푸르던 잎사귀가 어느날 저 혼자 붉은 낙엽이 된 것은 아니다. 나뭇가지에 파릇파릇 싹이 돋던 일이 나무 혼자 해낸 일 아니듯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일이 나무 혼자 해낸 일 아니듯이 저 떨어지는 낙엽이 저 홀로 낙엽 되어 울긋불긋 흩날리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가 오줌을 지리고 가고 새가 날아와 노래의 흔적을 남기고 가고 이웃 나무의 잎사귀와 함께 나란히 햇빛을 쬐고 가뭄에 사이좋게 샘물을 나눠 마시며 낙엽은 낙엽이 되기 전 오래 낙엽의 길을 걸어 왔다. 해와 달의 움직임에 맞추어 꽃과 열매를 키워내고 키운 꽃과 열매를 다시 꽃과 열매의 길로 보내고 이제 잎사귀마저 잎사귀의 길로 보내고 있는 나무, 나무는 비로소 조용히 나목으로 있고 싶은 것이다.

※최일화 시인은...

1985년 시집 '우리 사랑이 성숙하는 날까지'로 등단.
1986년 무크지 '현장문학'에 '양초를 찾다가' 등 2편 발표.
시집 '소래갯벌공원' '시간의 빛깔' '그의 노래' 외 다수.
2013년 인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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