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과잉 투자한 것이 문제가 되어서 싱가포르 경기가 주춤하던 때이었다. 하루는 택시를 타고 창이 공항으로 가는 길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택시운전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차이니즈(Chinese)냐?”

만일 그가 “그렇다.”라고 한다면, “중국과 싱가포르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연이어 물어보려던 속셈이었다. 그랬더니 뜻밖에 단호하게 돌아온 대답이 “아니다. 나는 싱가포르사람(Singaporean)이다.” 라는 것이었다. “중국인인 것 같은데?”라고 다시 물었더니 역시 “아니다. 나는 싱가포르사람이고 네가 인종을 묻는 것이라면 중국계 싱가포르사람(Chinese Singaporean)이라고 할 수는 있다.”라는 대답이다.

그 다음에 이어진 대화가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중국이 저렇게 강력한 나라가 되어 가는데 언젠가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가 모두 하나의 중국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싱가포르가 중국이 되려고 하겠느냐. 중국은 내 생각에 별로 좋은 나라가 아니다. 싱가포르는 살기 좋은 나라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부터 나서서 반대할 것이다.” “요즘 싱가포르 경제가 별로 좋지 않은데 중국과 합치면 좋지 않겠느냐.” “경제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그것 때문에 나라를 바꿀 수는 없다.” “당신은 싱가포르가 정말로 그렇게 좋으냐.” “물론이다. 싱가포르는 나의 나라다. 나는 싱가포르를 사랑한다.”

물론 그 택시 기사가 싱가포르 국민을 대표하지도 않고 그가 국가 전략이나 경제의 전문가도 아닐 것이다. 또한 싱가포르가 진작부터 그렇게 싱가포르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나라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싱가포르에 머물던 근 2년 간, 나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이런 모습을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 확인하곤 하였다.

싱가포르는 1965년이 되어서야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다. 그 이전에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 속해 있었고, 포르투갈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피식민지 경험도 겪었다. 따라서 변변한 독립적 역사의 기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제주도 크기만 한 국토에 특별한 자원도 없고 영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 지독한 병화(兵禍)를 경험하기도 하였고, 독립 후에도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민족들이 엉켜서 살면서 분쟁도 많았고 혼란과 피폐를 경험했던 나라다. 네 개의 공용어를 쓰고 있고 거의 모든 생필품을 말레이시아 등 국외에서 조달해야 하고 쓰레기의 처리조차 말레이시아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최근까지도 생활용수의 확보를 위해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나라다.

이런 나라가 오늘과 같이 변신하게 된 것은 리콴유라고 하는 탁월한 한 지도자의 헌신 덕분이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도덕과 청렴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강력한 리더십으로 정국을 장악하였고 싱가포르를 안전하고 청결한 나라로 만들어 나갔다. 안전과 청결은 싱가포르의 국가 브랜드가 되었고, 무엇보다도 그의, 다민족 융화적인 정치적 배려의 전략은 싱가포르의 이미지를 “통합된 사회”로 구축해 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사회적인 통합은 질서를 낳고 청렴은 정직한 공직사회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 다시 질서와 정직은 신용을 창출하였으며 그에서 파생된 청결한 환경은 관광의 고유상품이 되었다. 그와 같은 기반 위에 구축된 경제력으로 선순환이 가능한 복지 전략이 마련되었으며 그러한 복지 전략은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를 성장시켰다.

물론 싱가포르의 이러한 번영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국가 경영의 모델에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인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어떠한 초월적인 지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까. 또한 한 나라의 국민이나 시민들이 그들의 나라와 도시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에도, 타고난 애향과 애국심, 유별하게 아름다운 천혜적인 자연조건, 지속적인 교육의 효과, 특별한 역사적인 경험의 공유… 따위, 얼마든지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거기에는 싱가포르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부인하기 어려운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 나라와 도시가, 그 국민과 시민이 원하는 것을 충실하게 채워준다는 것이다. 삶이 의미 있기 위하여 필요한, 풍요와 쾌적, 안전, 삶의 재미, 그러한 것들의 지속성에 대한 믿음, 이러한 것들이 제공되는 나라와 도시를 인간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구성원들의 사랑이 비로소 그러한 상태를 지속시키는 선순환의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와 인천은 국민과 시민들에게 그중 어떠한 것을 제공하고 있는가. 국민과 시민의 선택은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대통령과 시장은 그들로부터 사랑의 필요를 끌어내야 한다. 사랑은 명령하거나 이벤트를 이용해 강매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감정이 아니다. 이벤트 예산이라도 아끼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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