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세상이 돌아가는 질서를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낸 논리학과 철학의 세계는 실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그에 관한 문헌들을 읽어나가다가 보면, 과연 이와 같이 난삽한 과정들을 통해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현실적으로 유용한 삶의 지혜라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특히 인간이 인식과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언어라는 도구의 허접함에 종종 절망을 경험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와는 좀 더 다른 차원의 문제로 머릿속이 혼란하다. 내 재주로는 도무지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체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원천적으로 어려워 나날이 마음속에 걱정과 두려움이 쌓이는 것이다.

좋다. 내가 아는 것이 오직 길가에서 얻어들은 시속과 갑남을녀들이 서로 소통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소위 “일반의 상식”뿐이라고 하자. 그것이 어떤가. 이 나라와 사회의 살림을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그와는 다른 어떤 도저(到底)한 수준의 또 다른 식견을 갖추어야 하는 것인가. 이 나라의 살림을 맡아 소위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나와 같은 수준의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살림을 살아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나랏일이 너무도 많다. 나라가 국방에 위협을 받는다면 능력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강병의 대책을 먼저 서두르는 것이 내게는 상식이다. 그러고 난 뒤라야 당사자 간에 담판을 하든, 협상을 하든 소위 말발이 서고 백성들이 안심하게 되는 것이고, 나보다 덩치 크고 힘센 상대와 겨루려면 절세의 무공을 닦든지 도와줄 친구들부터 긁어모아야 한다는 것도 동서고금 국방의 상식일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밝아졌다할지라도 병력과 무기는 감출 수 있는 데까지 감추고 보는 것이 오늘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는 모든 나라 병가의 상식일 것이고, 최고사령관이 혹시라도 제 병사(兵事)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을 때에는, 세상이 다 알게 부하부터 야단을 칠 것이 아니라, 행여나 누가 알세라 담당 지휘관을 조용히 불러 이견을 해소하든지 신상필벌을 하여야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방어포대 하나를 설치하는 것을 가지고 그렇게도 고도의 외교·국방적인 전술을 구사해야 하는 것이라면, 우선, 안으로 국민과 주민들의 설득에 주력하여 배치 여부에 대한 자유스런 선택의 여지를 확보해 놓았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그렇게 내부 교란의 여지부터 차단해 놓았을 때에 외부에 대항하여 그 지휘관의 선택에 신뢰와 무게가 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저임금과 정규직을 기업에 밀어붙이기 전에 기업의 현장사정에 대해 먼저 철저하게 파악했어야 하는 것이고 그에 대응한 대책이 사전에 마련되어 있었어야 할 것이다. 기본임금과 관계된 수당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지, 그것부터 먼저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 것도 아니고 그렇게 무시할만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라고 명령부터하기 전에 비정규직이 발생하는 원인을 먼저 파악했어야 하고,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비롯해서 무리한 정규직 전환이 가져오게 될 부작용들은 없겠는지, 그러한 조치가 오히려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방해하지는 않겠는지, 그러한 현장을 중재하기 위한 정부 측의 대책들을 먼저 마련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소득층부터 잡는 듯한 포퓰리즘적 과세를 선뜻 내지르기 전에 조세의 전가이론과 국민개세론에 입각한 조세 정의부터 살폈어야 하고 지하경제와, 아예 시장에서 숨어버린 매장 경제를 어떻게 양성화해서 재정기반을 확충할 것인 지부터 살펴보고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전을 멈추려면 이 나라 전력 사정부터 상세하게 국민들에게 설명해서 그들의 이해를 돕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하였어야 할 일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어떻게 전력 예비율을 비합리적으로 발표해 왔는지, 당분간 원전 증설을 미루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간을 갖더라도 우리는 왜 안심해도 되는 지부터 설명했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이니 모든 사정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대통령의 명령 한마디로 해치울 일은 아니질 않았겠는가.

국민들이 왜 그렇게도 지독하게 자식 교육에 매달리는지, 아파트가 어쩌다가 이 나라 경제의 멱살을 잡게 되었는지, 이 정부는 정말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바둑판 위에 아무리 똑같은 돌멩이를 늘어놓더라도 단 하나의 수순을 그르친 대마는 살 수 없는 법이고, 제 아무리 높은 가치와 이상을 향한 고고한 과업일지라도 두서를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목표에 이를 것인가. 이 나라의 살림을 맡은 이들이 시중이 알지 못할 논리와 철학의 세계에 따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를 빈다. /하석용 홍익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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